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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큰아버지 유일한 박사는 50세의 나이에도 한반도 수복을 위한 한국광복군 국내 침공작전인 ‘냅코(NAPKO) 작전’의 핵심 요원으로 활약했다. 어렸을 때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이야기인데 나중에 기록으로 접해보니 대단한 일이더라.”
유승흠(74) 한국의료지원재단 이사장(연세대 의과대학 명예교수)이 기억하는 백부(큰아버지)는 국가와 교육을 끔찍이 생각했던 강직한 인물이었다. 조카인 유 이사장은 최근 저서 ‘유일한 정신의 행로’(유일한연구원)를 통해 가까이서 지켜본 유일한 박사의 삶을 정리했다. 한국이 낳은 애국자이자 윤리경영기업가, 교육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으로 추앙받는 유 박사의 삶과 꿈을 엮은 책이다.
지난 22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경기빌딩 사무실에서 만난 유 이사장은 “백부는 국가와 교육을 가장 중요한 삶의 가치로 삼았고 기업과 가정이 그 다음 순위였다”며 “평생에 걸쳐 ‘애국’와 ‘애족(愛族·자기 겨레를 사랑함)’ 정신을 강조한 유일한 정신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소개하고 싶었다”고 집필계기를 밝혔다.
△조카가 정리한 백부의 전기
유일한(1895~1971) 박사는 유한양행과 학교재단 유한재단을 설립한 기업가이자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쓴 독립운동가였다. 그는 14세였던 1909년 독립군 양성을 위해 미국에 설립한 한인소년병학교 입학을 시작으로 꾸준히 독립운동에 기여했다. 독립운동가 서재필을 사장으로 영입해 설립한 류한주식회사를 통해 경제적으로 해외 동포들의 독립운동을 지원했고, 재미한인국방경위대(맹호군) 창설을 주도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5년 건국훈장을 받았다.
항일운동의 모태는 1900년대 초반 항일운동 서북지역 재정책임자를 맡았던 부친 유기연으로부터 비롯됐다.
“할아버지가 서북지역 재정책임자로 항일 운동에 동참했다. 당시 냉면집을 했는데 갓 밑에 편지를 넣어두면 필요한 자금을 갓 밑에 넣어주고 했다더라. 백부도 할아버지의 정신을 이어받아 평생 나라를 위해 애썼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1일 유일한 박사가 설립한 유한대학교 졸업식에 참석하면서 다시 한번 유 박사의 삶이 주목받기도 했다.
“백부가 ‘냅코 작전’ 때 그 연세에도 1조 조장을 했다더라. LA에서 한 시간만 가면 나오는 카타리나 섬에서 훈련을 받을 때는 선인장이 있는 곳에 떨어져서 가시에 찔려 혼났다는 이야기도 수차례 들었다. 들을 당시에는 무슨 말인지 잘 몰랐는데 수십년이 지난 후 기록을 보고 더 자세히 알게됐다.”
△수십년간 자료 수집…“인간미 넘쳤던 백부”
혹자는 유일한 박사를 냉철한 기업인으로 보기도 하지만 조카가 기억하는 백부는 인간미 넘치는 분이었다. 백부는 아들 뻘 동생의 아들인 유 이사장을 ‘너는 내 조카가 아니고 손자’라고 말하며 아꼈다. 가끔 영어로 편지를 써서 보내면 잘 썼다고 칭찬하면서 꼭 답신을 보내주곤 했는데, 백부와 실제 주고받았던 편지도 책에 실려있다.
“코리안타임을 따르지 말고 ‘약속 시간 3분 전에 나타나라’던가 ‘귀로 남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알고 남의 행복에 대해 생각할 줄 알면 더 훌륭한 사람이다’ 등의 이야기를 자주 해줬다. 특히 애국애족정신이 투철했고 항상 교육적이었다.”
유 이사장은 수십년간 집안과 관련된 자료를 수집해왔다. 이를 바탕으로 서재필과 1920년대부터 행보를 함께 왔던 것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밝혀냈다.
유 이사장은 “유일한 정신과 철학을 정확하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서 그간의 자료를 바탕으로 책을 썼다”며 “유일한의 윤리경영과 나라를 사랑했던 애국정신이 전 국민에게 퍼져나가서 다시 한번 곱씹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