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행켈만 한독상공회의소 대표는 지난 21일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독일 기업들이 ‘디리스킹(위험 회피)’의 거점으로 한국을 주목하는 이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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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베크 부총리의 방한이 눈길을 끄는 것은 최근 무역갈등을 겪고 있는 중국 방문에 앞서 한국을 찾았다는 점이다.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지난 12일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반보조금 조사 잠정 결론을 토대로 최대 38.1%포인트의 잠정 관세를 추가로 부과하기로 해 중국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중국은 EU산 돼지고기에 이어 배기량 2500cc 이상의 가솔린 엔진 장착 차량에 대한 반덤핑 조사 가능성을 언급하며 맞불을 놓고 있다.
EU와 중국의 무역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독일 부총리의 방한은 한국과 독일 간 협력 확대의 중요성을 상징하는 방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헹켈만 대표는 평가했다.
그는 “한국은 아시아태평양에서 독일의 두 번째로 중요한 수출 시장으로 자리잡고 있다”며 “하베크 부총리 방한은 양국 간 협력 증진에 대한 상호 관심을 보여주는 매우 긍정적인 신호”라고 강조했다. 하베크 부총리는 독일과 한국이 직면한 공통의 지정학적·지리적 도전 과제를 강조하며 경제·공급망 분야에서 긴밀한 협력 가능성을 언급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베크 부총리와 동행한 약 70명의 대규모 경제사절단도 상당한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고 헹켈만 대표는 설명했다. 대형 상장사부터 혁신적인 중소기업인 ‘미텔슈탄트’에 이르기까지 독일 산업의 다양성과 높은 기술 품질을 보여주는 기업들로 꾸려진 대표단은 한국과 협력을 확대하고자 하는 독일 측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독일이 디리스킹의 거점으로 한국을 주목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지난해 340억달러(약 47조2940억원)에 달하는 독일과 한국 간의 무역량은 양국의 견고한 경제관계와 전략적 파트너로서 한국의 매력을 반영한다. 독일의 한국 내 투자 규모가 150억유로(약 22조 3120억원)를 넘어서면서 양국 간의 상호 경제적 이해관계가 상당히 크다는 게 헹켈만 대표의 설명이다.
인프라와 숙련된 노동력, 우호적인 비즈니스 환경 등이 아시아 시장으로 진입하는 데 유리한 관문 역할을 하며 다양한 공급망을 제공하는 점도 한국을 주시하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한국이 기술 혁신을 주도하는 자동차, 전자, 첨단 제조업 등의 분야는 독일 기업의 우선 순위와 밀접하게 맞물려 전문지식과 자원 교환을 하는 데 이점이 크다고 판단했다.
특히 독일 기업들은 한국의 인공지능(AI)과 에너지 분야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독일 정부는 AI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오는 2050년까지 50억유로(약 7조4373억원)를 투입해 연구와 기술·인프라 개발을 뒷받침할 계획이다. 최근 한독상공회의소(KGCCI)가 독일 전문가들을 서울로 불러들여 한국의 AI 전략을 배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이들이 한국에서 다양한 분야에서 AI의 다양한 도입과 시도, 잠재력에 놀라워하며 산업 간의 다양한 응용 및 협력이 반영된 것을 직접 보고 배우고 갔다”며 “이런 변화는 한국과 독일 간의 더 긴밀한 협력 기회를 창출하며 이(e)-모빌리티, 친환경 기술, 스마트 제조 분야에서의 협력을 강화할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말했다.
지난 2019년부터 이어져 온 ‘한-독 에너지 파트너십’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파트너십은 정부 간 교류 뿐만 아니라 재계, 학계 등에도 협력과 의견교환을 위한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다. 또한 탈탄소화, 친환경 프로세스와 재생 가능 에너지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양국은 기술적 우수성과 산업 전문성을 바탕으로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헹켈만 대표는 “AI, 재생 가능 에너지, 자율 주행, 첨단 제조 등 미래 기술에서의 협력은 경제 성장과 글로벌 문제 해결에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며 “독일과 한국 기업의 상호 보완적인 역량을 활용하고 전문 지식을 결집해 신산업에서 새로운 성장 기회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