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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성기 이승현 기자]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 삼성전자 소속 임원 2명이 구속되면서 광범위한 증거인멸이 그룹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란 정황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 함께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태한 삼성바이오 대표와 달리 삼성전자 김모 사업지원 TF 부사장과 박모 인사팀 부사장은 결국 구속 신세를 면치 못했다. 사업지원 TF는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의 후신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사업지원 TF가 증거은폐를 주도했다는 점을 법원도 인정한 셈이어서 검찰 수사가 계열사인 삼성바이오를 건너뛰고 곧장 그룹 수뇌부를 겨냥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삼성바이오 대표·삼성전자 임원, 법원 판단 달리한 이유는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송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전날 오전 1시35분께 김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한 반면 삼성전자 소속 김모·박모 부사장의 구속영장은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며 발부했다. 이들은 모두 지난해 5월5일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 분식회계 의혹 관련 대응방안을 논의했고 이후 관련 증거를 없애라는 지시를 내린 혐의(증거인멸교사)를 받고 있다.
김 대표는 그러나 자신은 몰랐던 일이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검찰 대질신문 때 삼성바이오 임원들이 “김 대표의 지시가 있었다”고 하자 “내가 언제 그랬냐”며 화를 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의 변호인도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공장 바닥에 증거를 은닉한 사실을 몰랐으며 그렇게 광범위한 증거인멸이 있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송 부장판사는 “회의의 소집과 참석 경위, 회의 진행 경과, 이후 이뤄진 증거인멸 혹은 은닉행위 진행과정, 피의자 직책 등에 비춰보면 증거인멸교사 공동정범 성립 여부에 관해 다툴 여지가 있다”며 이런 주장을 받아들였다.
반면 김모·박모 부사장은 구속됐다. 김 부사장은 앞서 구속영장이 청구됐던 부하 임원을 직접 회유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사업지원 TF 백모(구속) 상무를 만나 “당신 선에서 처리한 것으로 진술하라”고 설득했는데, 검찰은 ‘꼬리 자르기’를 시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인사 담당인 박 부사장은 그룹 내 보안 업무를 총괄한 보안선진화 TF와 연관 있다.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해 구속된 사람은 총 7명으로 늘어났다.
◇법원도 분식회계 의혹 ‘정점’ 삼성전자 사업지원TF 의심
법조계에선 법원도 증거인멸의 주체로 삼성그룹을 의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송 부장판사 역시 김 대표의 공범 여부를 따져봐야 하지만 `삼성전자→삼성바이오→삼성에피스`로 내려온 증거인멸 지시를 실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삼성바이오가 분식회계 의혹 관련 자료들을 감추거나 없앴고 이 일은 삼성그룹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검찰 수사의 큰 틀은 여전하다. 앞으로 수사 성패는 증거인멸은 물론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이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규명하는 일에 달려 있다.
검찰 관계자는 “전체적으로 TF 지시에 따라 증거인멸이 이뤄졌다는 큰 틀에선 대부분 피조사자들 입장이 다르지 않다”면서 “조직적 증거인멸 행위에 대한 수사를 계속하는 한편, (김 대표)기각 사유를 분석해 영장 재청구 여부 등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증거은폐를 계획하고 주도한 의혹을 받는 사업지원 TF 수장인 정현호 사장을 조만간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