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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아버지의 장례를 모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난해 11월 14일 아버지께서 경찰의 물대포에 쓰러지신 날부터 지금까지 많은 분들이 마음을 모아주시고, 우리 가족들의 손잡고 싸워주신 국민들 덕분입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날부터 밤을 새워 곁을 지켜주던 수많은 시민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시신을 탈취하여 강제부검을 시도했던 이들로부터 아버지를 지켜 주신 분들께 고맙다는 말로는 저희들의 마음을 다 표현 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라도 감사 인사를 전할 수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우리 가족들은 아직 제대로 된 싸움은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아버지의 장례를 모시는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싸움의 시작이라고 해야겠습니다. 강신명 전 경찰청장과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비롯한 국가폭력의 책임자들은 기소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이제 이들은 살인미수죄가 아니라 살인죄로 처벌을 받아야 하는 이들입니다. 국민들의 힘으로 국회에서 청문회까지 열었지만 강신명과 구은수는 뻔뻔하게도 가족들 앞에서 “사람이 다치거나, 죽는다고 해서 반드시 사과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아버지와 우리 가족들을 모욕했습니다. 반성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들을 처벌하고 정부의 책임 있는 사죄를 받아내는 것이 우리 가족들의 첫 번째 싸움입니다.
지난해 아버지께서 시위에 참가하게 된 이유는 쌀값 폭락을 비롯해서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더 힘들어지는 농민들의 생존권 문제를 세상에 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문제들의 해결은커녕 더욱 심각해진 상황에서 농민들은 또 다시 11월 12일 민중총궐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쌀값이 더 떨어질 것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사료 값보단 싼, 쌀농사를 계속 지어서 무엇햐냐”는 농민들의 한숨도 들립니다. 이제는 더 떨어질 데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권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여러 차례 농민들이 쌀값의 현실화를 요구하며 서울로 올라왔지만 정부의 대답은 아버지가 물대포를 맞으셨던 그날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농민들이 제대로 대접받는 세상을 기다리는 것이 백남기 ‘농민 가족들의 두 번째 싸움입니다.
국민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면서도 관심의 끈을 놓지 말아주시라는 부탁을 다시 드려야만 하겠습니다. 잘못한 이들은 그게 누구든지 그 죗값을 치르고 사죄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하 일이 아닐까요. 나라를 떠받치는 근간인 농업이 합당한 국가적 지원과 관심을 받아야 한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식량은 곧 주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농민들이 농업을 포기하면 우리는 모두 주권을 잃은 나라의 국민이 된다는 것을 국민들은 다 알고 있는데 박근혜 정권만 모르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 가족들은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한 죄인들이 처벌받고 다시는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 아버지께서 꿈꾸시던 세상을 하늘에서라도 보실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희망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우리 가족들은 큰절을 올리며 우리 모두 ‘사람의 길’에서 함께 걸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국민 여러분께 부탁드립니다. 저희 아버지를 위해 마음 가져주신 것처럼 농업과 농촌 문제에도 관심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잊지 말고 관심과 힘 모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께 한 말씀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아빠 사랑해요.
생명과 평화 일꾼 백남기 농민 장녀 백도라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