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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다 빠지면 '진지리' 뜯어부릴라고요잉. 바다가 좋아졌나 '진지리'가 참 많아부러요잉."
장흥 사람들이 '진지리'라 부르는 '잘피'는 깨끗한 바다에서만 자란다는 수생식물이다. "지가 어렸을 때부터 김 양식을 했는디, 산(酸) 쓴 적이 없어요잉. 진지리 자랄 정도로 바다가 맑아야 매생이도 나고 파래도 나니께…." 이상희 이장이 말하는 '산'이란 김에 붙는 파래, 바다이끼 등을 제거하기 위한 '바다용 농약'이다. 예전엔 일일이 손으로 '잡초'를 제거했지만 일제시대 때 산을 이용한 김 방제가 시작돼 지금까지 김 양식장에서 흔히 쓰이고 있다. 염산(鹽酸)이나 유기산(有機酸)을 양식장 바닷물에 타면 조직이 강한 김만 남고 파래 같은 기타 부산물이 녹아 내리는 원리를 활용한 방법이다.
염산보다 안전해 정부에서 보조금까지 주는 유기산조차 장흥군에선 전혀 쓰지 않는다. 장흥군청 해양수산과 정창태씨는 "우리 선조들은 햇빛을 이용해 김에 붙는 파래 등을 제거해 왔다"며 "산이 김에는 안전할지 모르지만 장기간 쓰면 바다와 뻘의 건강을 해치고 결국 김의 품질이 나빠지지 않겠나"고 했다.
장흥에 파래와 매생이 양식장이 많아 대다수 농가에서 이들을 녹여버리는 산을 이미 쓰지 않고 있었던 것도 '무산(無酸) 김 선포'가 가능했던 이유다. 해양수산과가 지난해 180개 어가(漁家)를 조사한 결과 11집만 '산을 쓴다'고 답했다. 이 소식을 들은 어민들은 "요즘 유기농이 잘 팔린다더라. '장흥 김' 하면 '친환경 김'이 생각나도록 아예 '무산 김'을 선포하자"고 11개 어가를 설득했다. 올해 5월 '무산 김 선포식'은 지자체와 어민들이 함께 일궈낸 셈이다.
산을 쓰지 않는 '전통 방식'은 햇빛과 조수 간만의 차를 이용한다. 바다에 대나무 봉을 박고 그 사이에 줄을 건 다음 거기에 여름내 키운 김 모종을 붙이면 김이 줄에 붙어 머리카락처럼 자란다. 줄은 썰물과 밀물 때 수심의 중간쯤에 건다. 이렇게 하면 썰물 땐 김이 드러나 햇빛을 쪼이고 밀물 때 다시 물에 잠긴다. 파래나 이끼 등은 햇빛에 죽지만 김은 조직이 강해 살아남는다. 말하자면 '자연 방제'다. 조수 간만 차가 크지 않거나 물살이 센 바다에선 물에 띄운 넙적한 부표에 김을 붙이고 시간에 맞춰 부표를 뒤집어 김에게 '일광욕'을 시키는 방식으로 '잡초'를 제거한다. 장흥군에서 김 양식을 하는 70%가 부표를 쓰는 '부류(浮流)식'을, 30%가 대나무 봉을 사용한 '지주(支柱)식'을 쓴다.
무농약 농산물과 마찬가지로 '무산 김'을 만드는 데는 손이 많이 간다. 햇빛을 이용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없어지지 않는 부산물은 일일이 손으로 솎아 내야 한다. 햇빛을 쪼이면 김 성장이 느려져 생산량도 훨씬 적다. 이 이장은 "산을 쓰면 모종을 심은 후 15일 후쯤 수확할 수 있지만 전통 방식 그대로 하면 30일 넘게 걸린다"며 "올해는 무산 김 선포 첫해니만큼 다른 김보다 30% 이상은 더 받지 않을 예정"이라고 했다.
김은 가을에 심어 겨우내 수확한다. 처음 수확하는 '초벌'은 맛이 없어서 버리고 두 번째 수확하는 김부터 시장에 내놓는다. 10월에 심은 장흥 김은 초벌이 이미 끝났고 12월 7일쯤 첫 시판용 김이 선보일 예정이다. 정씨는 "산을 쓴 김이 더 윤기 있어 보이지만 굽고 나면 강하게 자란 무산 김이 눈에 띄게 '짱짱하다'(힘이 있다)"며 "밀도 있게 자라서인지 감칠맛도 훨씬 오래 가서 양념 안 하고 구운 다음 밥에 싸서 간장 콕 찍어 먹으면 다른 반찬 필요 없을 정도로 잘 넘어간다"고 했다.
장흥 김 어디서 살까
올해 김은 12월 10일쯤 시장에 나올 예정이다. 지난해 생산된 무산김은 풀무원(www.pulmuone.c o.kr)에서 '바다섬김'이라는 브랜드로 판매 중이다. 한 속(100장) 1만7000원. 올해 나오는 김은 가공이 끝나는 대로 풀무원을 통해 판매하거나, 장흥군청 홈페이지(www.jangh eung.go.kr) '정남진 장흥몰'에 '친정김'이란 이름으로도 판매될 예정이다. 문의 장흥군청 해양수산과 (061)860-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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