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좌동욱기자] 정부의 외환 정책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물가 상승 압력이 여전히 부담되는 상황에서 환율을 관리하는 고삐를 느슨하게 풀어버렸기 때문이다. 달러-원 환율은 한달 사이 80원 가까이 폭등, 지난 26일엔 1090원선까지 위협하고 있다.
정부에 대한 비판은 냉·온탕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정책 기조 변화에 집중된다. 이런 정책 변화가 환율 변동성을 더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다수의 전문가들은 국내외 경제 여건이 급변동하는 상황에서는 상황변화에 따른 유연한 대응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추석을 코 앞에 둔 시점에서 물가와 서민 안정을 더 고려해야 한다는 정치적 요구가 거세지고 있어, 정부 정책 기조가 유지될 지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출범 초 고환율 정책으로 경질 논란까지 빚었던 강만수 경제팀은 또 다시 환율 정책으로 정치적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 '냉온탕' 외환 정책..기조가 달라졌다
28일 달러-원 환율은 전일비 10.5원 오른 1089원.4원에 장을 마감했다. 달러-원 환율은 지난 21일 1050원선을 돌파한 후 거래일 나흘간 하루 평균 10원씩 급등했다. 이달 들어 거래일 17일 중 15일이 모두 오름세로 장을 마감했다,
하지만 정부는 외환시장 개입에 소극적이다. 7월초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함께 나서 '환율과의 전쟁'을 선포했던 기세는 한풀 누그러졌다. 지난달 정부는 하루 최대 80억달러, 한달간 200억달러(시장 추정)를 시장에 내다팔면서까지 환율을 끌어내리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7월과 8월 한달 사이 국내외 주요 거시 경제 여건이 크게 달라졌다"며 환율 정책 기조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지난 한달간 달라진 주요 경제 여건이란 ▲ 달러의 강세(주요국 통화 약세) 전환 ▲ 유가 하락 반전 ▲ 유럽·일본 경기 둔화 우려 ▲ 한국은행 금리 인상 등 3가지다. 여기에 주요 수출국 경기 둔화로 그동한 한국 경제를 떠받쳐온 수출 경기까지 흔들리고 있다.
◇ 전문가 "신축대응 바람직".. 급변동 시기 외환정책 유연해야
이렇게 달라진 경제 여건 탓에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정부 외환정책의 기조 변화를 "불가피한 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설명한다.
장재철 삼성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8월 이후 글로벌 달러 강세는 국제적 트렌드"라며 "정책 당국이 섣불리 들어가서는 개입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해변에 쓰나미가 몰려오는 데 섣불리 혼자 달려들어 막겠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현 상황을 비유했다.
송재은 금융연구원 연구위원도 "정부가 서둘러 시장에 개입하기보다는 큰 흐름을 두고 급등락만 막아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불과 한달 사이 정부 외환정책이 오락가락한다는 비판에 대해 "7월 당시 정부 정책은 효과가 있었다. 상황이 달라졌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국제 금융시장이 급변하는 상황에서는 정부 정책이 유연해 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환율 급등으로 인한 물가 부담에 대해서는 "우리 경제가 일정 정도 감내해야 할 부분"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유가 상승세가 한풀 꺾이면서 환율 상승으로 인한 물가 상승 압력을 생쇄하는 효과도 있다.
◇ 정부 외환 정책 갈림길..물가가 걸리네
하지만 정부가 지금과 같은 외환정책 기조를 유지할 수 있을 지 여부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환율 급등으로 인한 서민들의 물가 부담을 정치권이 외면하기 힘들다는 논리에서다.
실제 환율 급등이 소비자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직접적으로 나타나지만 유가 하락은 2~3개월 시간차를 두고 물가에 반영된다. 이 때문에 다음 주 발표되는 8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6%선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가 상승률 6%대는 지난 1998년 11월 6.8%를 기록한 이후 근 10년만의 일.
정부로서는 또 다시 고환율 정책으로 서민 생활고를 악화시킨다는 비판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 특히 달러를 송금해야 하는 기러기 아빠나 통화파생상품 등으로 환차손을 걱정해야 하는 중소 기업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어, 정부가 나서서 환율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추석 명절을 코 앞에 두고 있다는 정치적 부담도 상당하다. 한나라당과 정부는 추석 물가 급등에 따른 민심 이반 현상을 줄여보기 위해 전방위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환율이나 금리 등 거시 정책 툴을 빼고 나면 물가를 실제 낮출 수 있는 마땅한 정책 수단이 없다.
이런 정치적 부담 등으로 정부 내에서도 단기적으로 물가 안정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재정부 관계자는 "환율 정책을 두고 물가 부서와 외환 부서간 이견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가 외환시장 개입에 소극적으로 나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강만수 장관이 현재까지 물가팀보다 외환팀의 손을 들어주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대외 균형(경상수지, 수출 경기)와 대내균형(물가)이 상충될 경우 대외균형을 우선한다는 생각은 강 장관의 평소 소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