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권소현기자] "남편감으로 가장 인기있는 직업 순위 1위는 의사, 2위는 변호사...63위는 땅없는 농부, 64위는 배없는 어부, 65위 카드사 직원, 66위 증권사 본사 직원, 67위 대졸청년실업자, 68위 증권사 촉탁직원/서울역 거렁뱅이, 69위 증권사 영업직원"
지난 7월 증시가 700포인트대로 밀렸을 때 여의도 증권가에는 이런 내용의 메신저가 나돌았다. 우스갯소리에 불과하지만 증권맨의 위상이 얼마나 떨어졌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영업직원 못지 않게 애널리스트들도 값이 많이 떨어졌다. 억대 몸값을 자랑하며 여기저기서 스카웃 제의를 받던 시대는 이미 오래전 얘기다.
유난히 올해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신행정수도 위헌 판결, 차이나쇼크, 환율 급락 등 예상치 못했던 돌발 변수들이 많았던 만큼 펀더멘털과 무관하게 애널리스트들의 예측이 빗나간 경우도 많았다.
게다가 증시 침체로 증권사들이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자리마저 불안하게 됐고, 여기에 처우까지 떨어지면서 그야말로 수난시대를 맞고 있다. 증권사 직원으로 일하는 것을 `한철 장사`에 비유할 정도로 애널리스트들의 위기감은 극에 달한 상태다.
◇ 돌발변수로 괴로웠던 한해
`불이냐 베어냐`, 수급과 펀더멘털 등 여러가지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장세를 전망하는 애널리스트들에게 올 해는 특히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많은 한 해였다.
지난 3월12일 예상과 달리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면서 증시는 21.13포인트 밀렸고, 지난 4월29일 원자바오 중국 총리의 긴축정책 시사 발언 충격도 비슷해 26.42포인트 하락했다.
지난 10월 유가가 50달러를 돌파하면서 국내 경제에 먹구름이 짙게 드리워졌고 연말 달러/원 환율이 1100원 밑으로 떨어지면서 7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하자 IT주를 비롯한 수출주가 대거 밀렸다.
이처럼 예상치 않았던 사건으로 증시가 출렁이면서 애널리스트들도 적잖게 당황했다. 특히 낙관론을 고수했던 애널리스트들은 예상과 반대로 가는 지수를 보며 가슴 졸였다.
코스닥은 워낙 변동성이 큰데다 버블 붕괴 이후 상당히 축소되면서 시황 분석과 전망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그러나 지난 4월 코스닥이 갑자기 랠리를 보이자 애널리스트들은 관심을 보이며 너도나도 장미빛 전망을 내놓았다.
IT주를 중심으로 코스닥이 500을 넘어설 것이라며 외국인 관심, 저평가, 시장 정화 등 각종 근거들을 제시했다. 500선을 앞에 두고 코스닥지수가 주춤하자 일시적인 조정일 뿐 상승 추세가 꺾인 것은 아니라며 `go`를 외쳤다.
결국 이같은 전망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코스닥은 이후 하향길을 걸으며 7월말 300포인트대 초반으로 밀렸다.
종목별 전망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가 올들어 꾸준히 오르며 지난 4월 주가 60만원을 돌파하자 줄줄이 목표주가 상향을 외쳤다. 국내외 할 것 없이 대부분의 증권사가 `매수`를 권고했다. 목표주가 100만원을 제시한 외국계 증권사도 있었다.
그러나 5월부터 주가가 꺾이자 슬슬 눈치를 보더니 50만원을 하회하자 목표주가와 투자의견 하향 조정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최근에는 관심 종목에서 제외하고 `매도` 의견까지 내놓는 등 삼성전자에 대한 냉대가 두드러지고 있다.
전망을 해야 할 애널리스트들이 앞서가지 못하고 뒤쫓아가기에도 숨차보인다는 냉소가 쏟아졌다.
코스닥 기업 가운데 한통데이타나 코디콤처럼 갑작스러운 횡령 사건으로 애널리스트들의 뒷통수를 때린 사례도 있었다. 두 종목 모두 증권사로부터 `매수` 의견까지 받아본 업체였지만 어이없는 횡령사건으로 담당 애널리스트들의 식은 땀을 뺐다.
투자자들은 기업의 내부통제시스템이 이토록 허술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매수` 의견을 낼 수 있었느냐며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 줄줄이 여의도 떠나
이처럼 빗나간 예측으로 자괴감이 높아진 가운데 증권업계 구조조정까지 겹치면서 아예 애널리스트 직함을 버리는 경우도 생겼다.
LG투자증권과의 합병될 예정인 우리증권에서는 삼성전자 출신으로 현장 경험을 살려 국내 반도체 업종을 날카롭게 분석했던 최석포 애널리스트가 그만두면서 향후 거취와 배경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냈다.
대우증권에서 인터넷, 컴퓨터 업종을 담당했던 허도행 팀장도 증권업계를 떠났고, 교보증권 통신서비스 담당이었던 전원배 애널리스트는 코스닥 업체인 심텍의 IR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LG투자증권에서 철강 분석을 담당했던 이은영 애널리스트는 싱가포르로 떠났다.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외국계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도 많았다. 삼성증권 최승일, 이상미 애널리스트는 골드만삭스로, 강희주 애널리스트는 ABN암로로 한꺼번에 옮겼고 굿모닝신한증권의 황폴 애널리스트도 맥쿼리에 둥지를 틀었다.
한 애널리스트는 "소신있게 매도를 부르려고 해도 법인영업부나 자산운용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며 "회사의 방침에 따라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소연했다. 외국계 증권사는 상대적으로 이같은 부담이 덜해 일하기가 편하다는게 애널리스트들의 전언이다.
다른 애널리스트는 "펀드매니저와 기자, 애널리스트가 함께 업체를 방문하면 가장 홀대받는 사람이 바로 애널리스트"라며 "혹시라도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으면 업체로부터도 왕따를 당하기 십상"이라고 하소연했다.
이래저래 애널리스트들에게는 수난의 한 해였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