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천승현 기자] 다국적제약사들의 시장 방어 전략이 더욱 치밀해지고 있다. 제네릭(복제약) 제품들의 공세에 대비해 영업력 강화는 물론 특허소송까지 불사하며 강력한 방어책을 구축하고 있다.
영업력을 앞세운 국내제약사들이 수십개의 똑같은 제품을 내놓으면 오리지널 제품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 한때 연간 1000억원대의 매출을 기록했던 항혈전제 ‘플라빅스’는 제네릭 발매의 여파로 지난해 매출이 반토막났다.
◇특허분쟁으로 제네릭 진입 저지
다국적제약사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전략은 특허 분쟁이다. 다국적제약사들은 특허를 연장하기 위해 후속특허를 첨가하는 ‘에버그리닝(evergreening)’ 전략을 자주 사용한다. 오리지널의 물질특허가 만료돼 국내업체가 제네릭을 발매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 후속특허의 유효를 주장하면서 특허소송을 제기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다국적제약사와 제네릭 업체간의 특허분쟁은 대부분 후속특허의 무효 여부를 따지는 소송이다. 현재 고혈압약 ‘올메텍’·‘올메텍플러스’, 신경병증치료제 ‘리리카’, B형간염치료제 ‘바라크루드’ 등이 다국적제약사와 국내업체간 특허소송이 펼쳐지고 있다.
지난해 화이자와 국내업체간 펼쳐졌던 비아그라 특허소송도 비아그라를 발기부전치료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의 용도특허 분쟁이었다. 화이자는 한미약품이 비아그라 모양을 그대로 따라해 복제약을 만들었다며 디자인권 침해 금지 소송을 냈지만 고배를 들기도 했다.
노바티스가 이번에 고혈압약 ‘엑스포지’ 제네릭의 명칭에 이의를 제기한 것도 제네릭의 진입을 저지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존슨앤드존슨은 셀트리온이 개발한 바이오시밀러 ‘램시마’가 오리지널인 ‘레미케이드’의 제품명과 로고를 모방했다고 이의를 제기한 상태다.
◇국내업체와 공동판매로 영업력 강화
최근 들어 부쩍 늘고 있는 다국적제약사의 시장 방어 전략은 영업력 강화다. 제네릭이 발매됐거나 발매가 임박하면 우수 영업력을 확보한 국내업체와 손 잡고 시장을 방어하는 방식이다.
한국BMS는 B형간염치료제 ‘바라크루드’의 특허만료를 대비해 올해 초부터 보령제약(003850)과 공동으로 판매하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의 항궤양제 ‘넥시움’은 대웅제약(069620)이 같이 판매하고 있고, 로슈의 비만약 ‘제니칼’은 종근당(001630)이 영업에 가세했다.
한국MSD는 고혈압약 ‘코자’의 특허가 만료되자 SK케미칼과 손 잡고 제네릭제품의 공세를 막고 있다. MSD는 천식치료제 ‘싱귤레어’는 CJ제일제당이 같이 팔고 있다.
소염진통제 ‘울트라셋’(얀센+대웅제약), 골다공증약 ‘포사맥스’(한국MSD+대웅제약), 고지혈증약 ‘바이토린’(한국MSD+대웅제약), 위장약 ‘무코스타’(오츠카+종근당), 고혈압약 ‘아타칸’(아스트라제네카+녹십자) 등도 다국적제약사와 국내업체가 공동으로 제네릭의 공세를 방어하고 있다.
실제로 공동판매는 시장에서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평가다. 국내업체가 다국적제약사 제품을 대신 팔아주면서 국내사들의 시장 진입을 방해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제네릭 직접 발매 ‘맞불’
다국적제약사가 제네릭 제품을 하나 더 추가하는 사례도 눈에 띈다. 저렴한 제네릭을 하나 더 발매하면서 국내업체의 제네릭과 경쟁하겠다는 ‘맞불작전’이다.
다이이찌산쿄는 고혈압약 ‘올메텍’의 제네릭 발매가 임박하자 ‘올메액트’라는 제네릭을 추가하고 CJ제일제당에 영업을 맡겼다. 노바티스는 엑스포지의 제네릭 공세를 대비해 제네릭 사업부인 산도스가 제네릭 제품인 ‘임프리다’를 허가받았다.
화이자는 비아그라의 특허 만료 이후 매출이 급감하자 서울제약이 개발한 필름형 제네릭을 직접 팔고 있다.
이밖에 특허만료가 임박한 오리지널 제품을 다른 성분과 섞어만든 복합제를 내놓거나, 복용이 편리한 형태로 바꾸는 등의 진화 작업도 종종 이뤄진다. 또 일부 업체는 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 제품을 전담하는 영업조직을 꾸리는 등 다양한 시장 방어 전략이 시도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에 비해 다국적제약사도 굵직한 신약을 배출하기 쉽지 않아 주력 제품의 특허가 만료되면 손실은 막대해진다”면서 “업체마다 특허만료 의약품의 매출 손실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전략 마련에 초비상이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