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이 흐른 지금 한국 대중음악은 K팝이라는 이름을 달고 글로벌 시장을 휩쓸고 있다. 과거 대중음악 산업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조차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일이 기적처럼 현실이 된 것이다. 방탄소년단(BTS)을 필두로 블랙핑크, 뉴진스 등이 팝의 본고장인 미국 차트를 수놓고 있다. 1960년대 중반 비틀즈를 비롯한 영국 록 밴드들이 미국을 점령했던 ‘브리티시 인베이전’에 빗대 ‘코리안 인베이전’이라는 말이 나온다.
K팝에 대한 관심은 K컬처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지며 ‘오징어 게임’ 등 K드라마가 성공하는 바탕이 됐다. 브리티시 인베이전 당시 록 음악 외에도 ‘007’ 시리즈 등 영국 영화가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과 판박이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의 상당수는 K팝에 ‘꽂힌’ 이들일 것이라는 추측에 이견은 없다. 비틀즈가 여전히 영국 리버풀 관광업계를 먹여 살린다는 말이 나오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K팝이 인기를 끌면서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주가도 고공 행진 중이다. BTS가 소속된 하이브(352820)는 지난 5일 26만5000원을 기록했다. 연초 대비 무려 56.3% 상승한 수준이다. 에스엠(041510)은 33.6%, 와이지엔터테인먼트(122870)는 89.6%, JYP Ent.(035900)는 87.9% 각각 올랐다. 여의도 증권가에선 엔터주가 앞으로 더 오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문제는 대중음악의 유행이 짧다는 점이다. 지금 최정상의 아티스트가 10년 후에도 차트 상위권을 차지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비틀마니아’ 현상을 일으켰던 비틀즈는 데뷔 10년도 안 돼 해체했고, 미국에서 경쟁자들이 탄생하면서 브리티시 인베이전은 흐지부지됐다. 인기 장르의 변화도 빠르다. 1970~80년대를 풍미했던 록을 듣는 사람은 요즘 많지 않다. 걸그룹과 보이그룹의 댄스 뮤직 중심인 코리안 인베이전 역시 한때의 유행으로 그칠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영국 대중문화는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계기로 글로벌 시장의 한 축으로 자리를 잡았다. 1970년대에는 레드 제플린, 퀸, 데이비드 보위 등 다양한 장르의 록 아티스트들이 세계를 재패했고, 1980년대 초에는 ‘NWOBHM’(New Wave Of British Heavy Metal) 무브먼트가 나타나며 헤비메탈 본고장의 자존심을 세웠다. 이후 컬처 클럽 같은 팝 밴드 전성기에 이어 1990년대에는 댄스 걸그룹 스파이스 걸스뿐 아니라, 오아시스 등 모던록 밴드가 인기를 끌었다. 지금도 아델, 앤 마리, 샘 스미스 등 영국 가수들이 글로벌 최정상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제2, 제3의 브리티시 인베이전이 그냥 이뤄진 것은 아니다. EMI로 대표되는 영국 음반사들은 새로운 시장을 열어줄 신인 발굴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이를 통해 유행 장르의 변화를 선도했고, 때로는 미국의 유행을 빠르게 따라잡았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가 “변화를 탐색하고, 변화에 대응하고, 변화를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코리안 인베이전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지금의 성공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BTS나 블랙핑크의 아류만 양산해서도 곤란하다. 다양한 장르의 새로운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투자를 해야 한다. 그래야만 엔터 산업이 지속 성장할 수 있고, 엔터주 역시 우상향 곡선을 그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