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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미국이 최근 금리를 올린 것을 두고 ‘인상기’라고 하는 건 이유가 있다. 무서울 정도로 잇따라 금리를 인상했던 전례가 많은 미국의 특성 때문이다.
지난 2000년대 중반 2년여간 17차례에 걸쳐 4.25%포인트 금리를 올렸던 게 대표적이다. 1%대에서 단박에 5%대로 인상한 것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이번달 기준금리를 연 0.75%(상단 기준)에서 연 1.00%로 올린 것은 긴 인상기의 한 과정일 수도 있다. 연준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제로(0)금리를 유지하다가 2015년 12월 처음 올렸고, 이후 1년 만인 지난해 12월 두 번째 인상을 결정했다. 이번은 어쩌면 세 번째에 불과하다. 미국 기준금리는 향후 언제, 또 얼마나 더 ‘윗쪽’를 향할지 알 수 없다.
이는 우리 경제에 불확실성 그 자체다. 금리는 내려갈 때보다 올라갈 때 충격이 더 크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추후 우리 경제, 특히 실물경제는 어떤 영향을 받게 될까.
일단 필요한 건 과거 미국의 인상기 당시 우리 경제성장률을 살펴보는 일이다.
◇과거 인상기 때 성장률 어땠나
18일 한국은행과 현대경제연구원 등에 따르면, 미국이 2004년 6월~2006년 7월 2년1개월간 기준금리를 1.00%에서 5.25%로 4.25%포인트 인상했을 당시 우리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평균 4.2%를 기록했다.
이는 금리 인상기 직전 1년간 성장률(3.9%)과 비교하면 오히려 더 높은 수치다. 카드사태 후폭풍이 국내 경제를 강타했던 특수성이 있긴 했지만, 어쨌든 미국의 금리 인상이 실물경제에 큰 충격을 주지는 않은 것이다. 인상기 이후 1년간 성장률은 5.0%로 추가 상승했다.
수출도 성장세를 유지했다. 2000년대 중반 인상기 직전 1년간 수출 증가율은 평균 27.8%. 인상기(16.2%)와 인상기 이후 1년(15.2%) 당시 증가율은 10%포인트 넘게 하락했지만, 그럼에도 절대적인 수준은 여전히 높았던 것이다.
김천구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 미국의 금리 인상은 미국 경제의 회복을 전제한 것”이라면서 “국내 실물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다”고 말했다.
1990년대 후반 상황도 비슷했다. 미국이 1999년 6월~2000년 5월 총 6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1.75%포인트 올리는 동안 우리 경제성장률은 11.9% 급등했다. 직전 1년(1.6%)보다 훨씬 더 높았던 것이다.
수출 역시 마찬가지다. 금리 인상기 때 증가율은 무려 21.6%에 달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는 동안 우리 경제는 외환위기 충격에서 벗어났던 것이다.
◇“한국경제 성장?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지금 국내 경제는 어떤 영향을 받을까. 과거처럼 경제성장률과 수출증가율이 동시에 반등할 수 있을까.
“만만치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수출은 그나마 반등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이번달 1~10일 수출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19.3% 증가했다. 1월(11.2%)과 2월(20.2%)에 이어 두자릿수 증가율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의 경기 호조세가 뚜렷하고, 바닥을 기던 유럽과 일본이 서서히 반등하는 점이 수출에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학계 전문가들과 당국자들 사이에도 우리 경제의 ‘믿을맨’이 수출이라는데 큰 이견이 없다.
대규모 자본유출 가능성도 크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경상수지 흑자 기조 △높은 국가신용등급 △양호한 외환건전성 등을 감안해서다. 이미 우리나라와 미국의 10년 국채금리는 지난해 4월 역전됐지만 별다른 금융 충격은 없는 상태다.
LG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지난해 12월(1조7360억원) 이후 국내 주식을 순매수하는 추세다. 올해 1월과 2월 순매수 규모도 각각 1조7860억원, 6580억원. 이번달에는 15일까지 2조7910억원이나 사들이고 있다. 금융 안정은 실물경제 성장의 기반이 된다.
◇부채 부담…소비가 발목 잡을듯
문제는 전반적인 성장률이다. 특히 내수 부진이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수출 호조가 내수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사실상 끊어지다시피 했다는 냉정한 관측도 나온다. 한은 한 금융통화위원은 “세계 경기가 좋아지다보니 기업의 수출은 개선될 것”이라면서도 “문제는 소비심리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4분기 경제성장률이 0.4%에 그친 것도 내수 부진이 큰 영향을 미쳤다.
한은은 오는 24일 3월 소비자심리지수(CCSI) 결과를 발표하는데, 그 전망은 밝지 않다. CCSI는 지난해 11월 정국 혼란과 함께 기준치(100)을 한참 밑도는 95.7로 급락했고 그 이후 3개월간 95를 넘지 못했다. 나중혁 KB증권 이코노미스트는 “기준치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간소비의 주체인 가계의 부채가 천문학적이라는 점도 부담이다. 금융인 출신 김영익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 라디오 방송에서 미국의 금리 인상을 두고 “가계부채가 가장 걱정”이라고 했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국내 경기 회복을 동반하지 않은 채 외부요인에 의해 시중금리와 대출금리가 상승한다면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가계소비가 위축될 수 있다”면서 “가계부실 위험도 커질 수 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우리 경제가 최근 세계 경제의 회복세에 발을 맞추지 못할 경우 경제정책 자체가 긴축과 완화 사이에서 갈팡질팡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