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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제공] 산소보단 니코틴이나 타르 쪽에 훨씬 폐가 길들여져 있을 정도로 심각한 골초인 내게 10시간이 넘는 비행은 언제나 수행과 고행의 참된 시간이다. 그런 이유로 암스테르담의 스키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육지를 찾는 보트피플의 심정으로, 어디에도 없는 흡연실을 찾아 헤매는 나. 스넥코너 직원은 그냥 아무데서나 피우란다. ‘NO SMOKING’스티커를 힐끔거리며 망설이자 환하게 웃으며 또다시 던지는 한 마디. “괜찮아! 여긴 암스테르담이잖아!” 맞다! 그곳은 마리화나와 매춘, 그리고 동성간의 결혼이 합법인 나라, 그래서 누군가는 ‘유럽의 하수구’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던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이었다.
그 곳에서 아이를 동반한 가족여행을? 일생에 한 번(혹은 몇 번)뿐인 신혼여행을?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것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암스테르담은 내가 아버지가 되면 아이와 함께 꼭 와야 할 도시 0순위의 도시일 만큼 매력이 가득한 곳이었다. 유럽 여행을 떠나면 최소한 너덧국가는 들러줘야 직성이 풀리는 탓에, 반나절 이상 암스테르담에 머물 마음이 없는 이들을 위해 단 한 곳을 추천하라면 거침없이 ‘하이네켄 익스피리언스(Heineken Experience)’라 두 주먹 불끈 쥐고 이 연사 외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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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ineken Experience’라고 커다랗게 글자가 쓰인 건물 입구로 들어서면 1863년 창립자인 헤라르드 아드리안(Gerard Adriaan)이 ‘엄니, 암스테르담에 작게 술 공장 하날 만들었는데 요거요거 잘~만하면 대박나겠수!’라고 쓴 편지가 먼저 보인다. 요것으로 시작되는 투어는 맥주의 원료가 되는 물의 발원지로부터 출발하여 각종 영상들과 탑승기구, 비디오 게임 등을 동해 마지막으로 막 만들어진 맥주 한 잔을 자신이 직접 마시는 과정으로 끝이 난다. 사실 그 곳은 박물관이라기보다는 그냥 놀고 즐기며 행복해지자는 네덜란드의 국민성을 가장 잘 표현하는 판타지 월드라는 표현이 더 적당하다.
하이네켄 본사를 방문했을 때 그건 더 명확해졌다. 그 곳에서 회의는 마치 퇴근 후에 기분 좋은 회식을 하러 나온 듯 맥주를 마셔가며 이뤄진다. 전날 밤 시내 레스토랑에서 우연히 만나 인사를 했던 몇몇 낯익은 직원들도 그 자리에 있었다. 한 달에 일주일씩 암스테르담 시내 200여 개 넘는 술집을 들러 하이네켄 맥주를 맛보는 일이 자신들의 가장 중요한 업무라며 혀 꼬부라진 소리를 하던 그들 역시 당연하다는 듯 맥주를 마시며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그것이 강요된 애사심쯤으로 치부하기엔, 감히 확신하건데, 분명히 행복해 보였다.
이 곳에 살면서 삶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모두들 건강한 아름다움을 가졌다는 것이다. 호텔 웨이터로 근무하고 있는 소아마비 장애인의 건강한 미소와 마주치는 순간, 버려도 아주 오래 전에 버렸어야 할 내 외모에 대한 아쉬움이나 미련, 혹은 넘치는 콤플렉스를 완전히 떨쳐버릴 수 있었다.
사실 암스테르담의 명성에 누를 끼치는 공창지역만 해도 대한민국 대부분의 총각이 희생된 옛 청량리 어느 곳처럼 배설의 쾌락만을 위한 곳이 아니다. 아무래도 성적으로 소외받기 쉬운 중증 장애인들이나 실버세대들을 위한 배려의 의미가 더 크다는 현지인의 얘기에서도 알 수 있듯, 그 바탕은 인간의 행복에 있다. 맑고 투명한 눈동자, 나이를 짐작하기 힘들만큼 갓난 애기 같은 피부, 연분홍색 입술 그리고 경계심 없는 밝고 환한 미소…, 암스테르담 사람들은 그 어떤 관광거리보다 값지고 귀한 것이었다. 혹 나중에 내 아이가 생긴다면 그곳에서 행복하고 건강하게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다른가를 가르쳐주고 싶다.
(암스테르담=글·사진 신정구(방송작가))
p.s 북적이는 관광객을 벗어나 산책의 진수를 맛보고 싶다면 라우리흐라흐트(Lauriegracht)거리로 가자. 암스테르담의 소호(SoHo)쯤이랄까? 운하를 따라 이어진 주택가 1층에는 크고 작은 갤러리와 서점, 각종 앤틱숍과 개성있는 콜렉트숍이 아이쇼핑만으로도 하루가 모자랄만큼 끝없이 이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