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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안 죽음, 끝 아냐”…‘고문 피해자’ 김근태 딸의 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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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지헌 기자I 2026.03.30 06:05:03

고 김근태 의원 자녀 김병민 씨 인터뷰
"父, 이근안 진정성 없는 사과에 끝까지 번뇌"
"`이근안 악마화` 끝 아냐…국가폭력 과거 바로잡아야"
경찰, 포상 7만여건 전수조사 착수

[이데일리 석지헌 기자] 군사독재 시절 ‘고문기술자’로 알려진 이근안 전 경감이 지난 25일 88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그의 생은 마침표를 찍었지만 이 전 경감으로 대표되는 국가폭력의 상흔과 청산되지 못한 과거사는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과제를 남겼다.

이 전 경감의 고문의 대표적 피해자인 고 김근태 의원의 자녀 김병민 씨는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가해자의 삶이 끝났다고 해서 피해의 기억까지 함께 끝나는 것은 아니다”라며 “어떤 죽음은 많은 것을 정리해주기보다 오히려 아직 정리되지 못한 질문들을 다시 남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정부 역시 이 전 경감을 포함해 국가폭력에 가담한 경찰의 포상을 취소하기 위한 절차에 착수했다.

“사과없이 죽은 고문기술자…남은 상처는 그대로”

고(故) 김근태 의원(가운데)과 자녀 김병민 씨(왼쪽), 김병준 씨의 과거 사진.(제공= 김근태재단)
김씨는 아버지가 생전 고문 가해자인 이 전 경감을 대하며 겪었던 처절한 고뇌의 순간을 상세히 전했다. 지난 2005년 2월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던 김 의원이 여주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이씨를 직접 면회했다는 소식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언론은 ‘20년 만의 화해’라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피해자가 홀로 감내해야 했던 지독한 번뇌가 있었다고 했다. 김씨는 “아버지는 용서를 통해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려 했지만 면회 이후 가해자의 진정성이 의심되는 상황 속에서 마음으로 용서할 수 없는 현실과 자신의 사회적 위치·심성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에 무척 괴로워하셨다”며 “당시 한 목사님이 ‘용서는 신의 영역이니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하신 뒤에야 마음이 다소 편해지셨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 전 경감은 끝내 진심 어린 사죄를 남기지 않았다. 1999년 자수 후 7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이 씨는 출소 후 목사로 활동하며 사죄의 뜻을 밝혔지만 공개 석상에서 과거 행위를 정당화하는 듯한 발언을 이어가 거센 비판을 받았다. 2010년 인터뷰에서 고문을 ‘하나의 예술’이라 지칭하거나 2012년 자서전 출판기념회에서 ‘당시 간첩을 잡는 것은 애국이었다’고 강변한 것이 대표적이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도 지난 26일 성명을 통해 “이 전 경감은 끝내 고문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지 않은 채 생을 마감했다”며 깊은 유감을 표했다. 이어 “가해자의 죽음은 그가 저지른 만행을 지울 수 없다”며 “민주주의 역사에 새겨진 피해자들의 고통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김씨 역시 이 전 경감의 생전 발언들에 대해 “이씨의 행태는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상처이자 2차 가해였다”며 “진실 위에서 사람의 존엄을 세우는 일이 아버지가 진정으로 바라셨던 화해의 전제조건이었다”고 했다.

고(故) 김근태 의원이 감옥에서 출소한 날 자녀들과 찍은 사진.(제공=김근태재단)
‘금빛 훈장’ 7만개 전수조사… 대통령 “박탈 당연”

정부와 경찰은 ‘뒤집힌 공로’를 바로잡기 위한 실무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경찰청은 이달 초부터 1945년 창설 이래 수여된 정부 포상과 표창 7만여 개에 대한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이 전 경감 등 국가폭력 가해자들이 받은 표창의 적절성을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29일 “고문과 사건 조작 같은 최악의 국가폭력 범죄자들에게 준 훈·포장 박탈은 만시지탄이나 당연한 조치”라며 힘을 실었다.

다만 정부의 의지가 실질적인 박탈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법적 장벽이 있다. 현행 상훈법과 정부표창규정상 ‘소급 적용’의 근거가 미비하다는 점이 최대 걸림돌로 지적된다. 지난 2017년 규정을 개정해 표창 박탈 근거는 마련했지만 규정 신설 이전인 1970~1980년대에 수여된 포상에 대해 소급 적용이 가능한지를 두고 법적 다툼이 발생할 소지가 크다.

김씨는 “이근안이라는 개인을 악마화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며 “국가폭력을 지시하고 묵인했던 이들이 여전히 고위직과 정치권에 머무는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젊은 세대를 향해 “민주주의는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인 사람들의 고통 위에 세워진 것”이라며 “과거를 기억하는 이유는 증오를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같은 비극을 다음 세대에게 넘기지 않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고(故) 이근안 전 경감 (사진=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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