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노동시간에도 두 개의 시장이 있다[김덕호의 갈등사회]

이 기사 AI가 핵심만 딱!
애니메이션 이미지
최은영 기자I 2026.07.23 05:03:00

Google 검색에서 이데일리 기사를 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대기업 정규직엔 노동시간 단축이 삶의 여유지만
中企 비정규직엔 줄어든 수당·생활비가 될 수도
좋은 정책은 노동시간을 똑같이 줄이는 것이 아냐
노동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에 맞는 보상 보장해야

[김덕호 성균관대 교수·경제사회노동위원회 전 상임위원]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흐른다. 그러나 노동시간은 결코 공정하지 않다. 시계는 같은 시간을 재지만 노동시간은 시장과 제도가 함께 배분하는 자원이다. 노동정책은 결국 누구의 시간을 보호하고 누구의 시간을 보이지 않게 만들 것인가를 선택하는 일이다.

김덕호
누군가는 퇴근 뒤에도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누군가는 하루 한 시간이라도 더 일하기를 기다린다. 어떤 노동자는 회의와 보고 속에서 하루를 보내고 어떤 노동자는 땀과 위험을 견뎌야 하루의 소득을 얻는다. 우리는 모두 노동시간을 이야기하지만 서로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

정부는 2030년까지 연간 실노동시간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700시간대로 낮추고 일하는 방식도 혁신하겠다고 한다. 방향은 옳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정책의 성패는 시간을 얼마나 줄이느냐보다 어떤 노동의 시간을 기준으로 설계하느냐에 달렸다.

한국의 노동시간은 줄어 왔다. 그러나 일이 함께 줄어든 것은 아니다. 업무량과 인력 구조, 성과 압박이 그대로라면 줄어든 시간은 더 높은 업무 밀도로 메워지거나 기록되지 않는 초과근로로 이어진다. 시간을 줄였지만 일은 줄지 않은 것이다.

직장인의 하루는 분주하다. 회의가 끝나면 또 다른 회의가 잡히고 이미 결정된 내용을 다시 설명할 자료를 만든다. 업무는 끝났지만 퇴근은 하지 못한다. 엑셀 파일을 열어둔 채 자리를 지킨다. 일을 끝냈는지가 아니라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퇴근 뒤 울린 메신저에는 ‘내일 보면 됩니다’라는 말이 붙어 있지만 답장을 보내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다. 직장갑질119가 직장인 1000명을 조사한 결과 66%가 퇴근 이후나 휴일에도 업무 연락을 받았다고 답했다.

사람들이 게을러서가 아니다. 조직은 성과보다 일하고 있다는 증거를 더 쉽게 평가하고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그 기준에 맞춰 행동할 뿐이다. 덴마크의 인류학자 데니스 뇌르마르크와 철학자 아네르스 포그 옌센은 이를 ‘가짜노동’(Pseudowork)이라고 불렀다. 실질적 가치 창출과 거의 연결되지 않으면서도 조직의 관성과 통제 속에서 반복되는 노동이다. 한국의 가짜노동은 신뢰보다 통제가, 성과보다 가시성이, 문제 해결보다 책임 회피가 우선하는 조직문화의 산물이다.

진짜 성과는 측정하기 어렵다. 회의 횟수, 보고서 분량, 메신저 응답 속도는 쉽게 측정된다. 조직은 중요한 것보다 측정하기 쉬운 것을 관리한다. 보고를 줄였다가 문제가 생기면 “왜 미리 공유하지 않았느냐”는 책임이 돌아온다. 반대로 의미 없는 회의와 과도한 보고로 시간을 허비해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 그 결과 사람들은 효율적인 선택보다 안전한 선택을 하게 된다. 가짜노동은 개인의 게으름이 아니라 조직이 만들어낸 가장 합리적인 생존전략이다.

그러나 노동의 성격이 다르면 시간의 문제도 달라진다. 노동시간에도 두 개의 시장이 있다. 대기업 정규직을 중심으로 한 내부노동시장에서는 얼마나 오래 일하느냐 못지않게 시간을 무엇에 쓰느냐가 중요하다. 시간과 성과가 직접 연결되지 않을수록 형식은 늘고 진짜노동의 시간은 줄어든다. 이들에게 실노동시간 단축은 가짜노동을 걷어내고 그 시간을 다시 일과 삶으로 돌려주는 것이다.

반면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가 많은 외부노동시장에는 전혀 다른 현실이 있다. 건설현장, 조선소, 중소 제조업의 시급제·교대제 노동자에게 시간은 곧 임금이다. 일하지 않은 시간은 곧 줄어든 수입이다. 플랫폼 종사자와 자영업자에게는 법정 노동시간 단축보다 일한 시간과 대기시간이 소득으로 제대로 이어지는지가 더 절박하다.

그래서 같은 노동시간 정책도 시장에 따라 다른 결과를 만든다. 누군가에게 노동시간 단축은 삶의 여유를 되찾는 일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줄어든 수당과 메워야 할 생활비의 문제다.

노동시간 논의는 주로 내부노동시장의 경험과 목소리를 중심으로 흘러왔다. 조직된 집단의 시간은 정책에 더 잘 반영되지만 조직되기 어려운 사람들의 시간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근로시간 단축이 모두에게 같은 혜택을 주는 것처럼 말해도 실제 결과까지 같지는 않다.

노사 갈등도 여기에서 시작된다. 기업은 회의와 보고를 줄여 생산성을 높이자고 한다. 노동자는 결국 같은 일을 더 짧은 시간에 끝내라는 뜻이 아니냐고 묻는다. 둘 다 틀리지 않다. 가짜노동 감축이 노동 강도 강화나 인력 감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현실이다. 반대로 모든 관행을 그대로 둔 채 시간만 줄이는 방식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신뢰다. 무엇을 줄일지 충분히 설명하고 그 과정에 함께 참여하며 결과를 함께 책임질 수 있을 때 신뢰가 생긴다. 그럴 때 실노동시간 단축은 생산성과 공정을 함께 높이는 개혁이 될 수 있다.

실노동시간 단축은 시간을 줄이는 정책이 아니라 일을 다시 설계하는 정책이어야 한다.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이뤄진 노동은 빠짐없이 기록하고 정당하게 보상해야 한다. 그 위에서 노사는 가치를 만드는 일과 목적을 잃고 반복되는 일을 구분해야 한다. 가짜노동을 걷어내 확보한 시간을 더 많은 업무로 다시 채워서는 안 된다. 그 시간은 휴식과 학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생산성 향상이 노동자의 삶을 함께 개선할 수 있다.

노동시간 정책을 하나의 시계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건강권과 안전이라는 원칙은 지키되 산업과 직무, 고용 형태가 다른 노동시장의 현실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모두의 시간을 똑같이 줄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노동의 시간을 공정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에 등장하는 농민들의 손은 거칠고 투박하다. 고흐는 그 손으로 직접 땅을 일궈 얻은 감자를 식탁에 올리는 사람들을 그리고 싶었다. 오늘도 그런 손은 건설현장과 조선소, 물류창고와 거리, 돌봄의 현장에서 묵묵히 하루를 일구고 있다. 그 손에는 시간과 결과, 생계의 연결이 그대로 드러난다.

가짜노동을 줄이는 것은 생산성의 문제다. 그러나 진짜노동이 정당하게 대우받도록 만드는 것은 공정의 문제다. 노동시간을 둘러싼 갈등의 본질은 시간을 얼마나 줄일 것인가에 있지 않다. 어떤 노동의 시간을 기준으로 정책을 설계할 것인가에 있다. 좋은 노동시간 정책은 시간을 똑같이 줄이는 정책이 아니다. 서로 다른 노동의 가치를 공정하게 인정하고 그에 맞는 시간과 보상을 보장하는 정책이어야 한다.

이 기사 AI가 핵심만 딱!
애니메이션 이미지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