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학고를 나와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에서 산업 디자인을 전공한 김성준(사진·33) 렌딧 대표는 우연한 기회에 P2P금융에 눈을 돌렸다. 미국에서 사회적기업과 소셜커머스 창업에 도전한 후 한국에 돌아와 금융 장벽에 부딪혔을 때였다. 대출이 필요했지만 은행에선 국내 신용기록이 없어 거절당했고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에선 연 20%를 넘는 고금리가 부담스러웠다. 김 대표는 “국내 소비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금융서비스는 큰 틀에선 수십년간 변화없이 정체돼 있었다”며 “미국의 P2P금융 시장을 보며 우리나라에도 새로운 금융서비스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떠올렸다.
◇정교한 신용평가·분산투자 시스템으로 틈새 공략
2015년 출범한 렌딧은 대출자와 투자자를 중개해 연 10%대 중금리 시장과 연 10% 수익률의 투자처를 제공하고 있는 개인간(P2P) 금융기업이다. 현재 500억원에 이르는 누적대출액으로 P2P 개인신용대출 분야 1위 업체로 자리매김했다. 지난달 국내외 벤처캐피탈 3곳으로부터 총 100억원의 시리즈B 투자 유치에도 성공했다.
김 대표는 “누적 대출액의 30%는 지난 3개월 동안 이뤄졌을 정도로 성장 속도가 빠르다”며 “P2P금융이 개인신용대출 시장(900조원)에서 5%를 차지하는 미국과 달리 국내 시장에서 렌딧은 0.02%를 차지하는 정도로 앞으로의 성장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내다봤다.
렌딧은 자체 개발한 신용평가시스템인 렌딧CSS(Credit Scoring System)로 제도권 내 중저신용자로 분류된 그룹 안에서 상환 능력이 있는 이들을 골라낸다. 신용정보회사(NICE신용평가)로부터 제공받은 300여 개의 금융정보를 바탕으로 렌딧 홈페이지를 이용하는 방식 등 비금융정보까지 더해 신용도를 평가한다.
김 대표는 “은행들과 같이 금융정보를 활용해 신용평가를 하지만 데이터 분석력에서 차이가 있다”며 “같은 5등급의 고객이더라도 7등급에서 5등급으로 올라갔는지 혹은 3등급에서 5등급으로 떨어졌는지에 따라 상환능력을 세분화해 평가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31일 기준 렌딧의 대출자 연체율(1~3개월 상환지연)과 부실률(3개월 이상 상환지연)은 각각 0.43%, 1.25%를 기록했다.
출범 3년째를 맞는 렌딧은 부동산 담보나 건축자금, 예술품 등 상품군을 다양하게 늘려가고 있는 다른 P2P업체들과 달리 개인신용대출만을 고집하고 있다. 김 대표는 “한 우물만 파다보니 데이터가 쌓이며 전문성이 올라갔다”며 “현재 대출 고객의 데이터건수는 2000만개, 투자자 분산투자건수는 200만 건에 이른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향후 인공지능(AI) 데이터분석이 될 수 있을 만큼 수억개의 데이터를 쌓아 심사모델을 보다 고도화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 10%대의 수익률을 내고 있는 P2P금융은 매력적인 투자처이기도 하다. 김 대표는 렌딧의 투자 강점으로 ‘분산 투자’를 꼽았다. 최소 투자단위가 5000원으로 P2P업계 내에 가장 적은 만큼 동일한 투자금액으로 더욱 많은 분산 투자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통계적으로 200건 이상에 분산 투자를 할 때 위험률이 급격히 내려가 분산 투자가 리스크 관리를 돕는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 매월 일정금액의 이자수익과 원금을 지급하는 원리금균등상환방식으로 안정성을 높인 점도 특징이다. ‘렌딧 데일리 자동투자 서비스’를 이용하면 투자 원리금이 입금될 때 마다 자동으로 재투자가 가능해 월복리 효과도 누릴 수 있다.
◇금융의 변화를 꿈꾼다
P2P금융시장은 투자 한도 제한과 제3자 기관 예치, 선대출 금지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P2P대출 가이드라인’의 본격시행으로 새로운 변화를 맞고 있다. 김 대표는 금융 분야의 규제는 필수적이라고 공감하는 가운데 규제의 전반적인 방향에는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김 대표는 “현재 가이드라인은 투자자를 보호하는 데에는 충실하지만 대출자를 보호하지는 못한다”며 “선대출 금지 조항은 단 며칠 동안을 참지 못하고 고금리 시장으로 내몰리는 저신용자들에게 발빠른 대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막는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할 수 있는 업무를 정해놓고 그 밖의 것은 금지하는 포지티브 방식의 금융 규제는 이미 기존에 있는 대상을 규제할 수 있는 방식”이라며 “새로운 산업과 서비스를 미리 알고 정의하고 규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국 등과 같이 금지하는 것만 제외하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네거티브 방식의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의 궁극적 목표는 ‘변화’다. 그는 비효율적이었던 중금리 대출 시장을 기술을 통해 변화시키며 보수적인 국내 금융에 조금씩 균열을 내고 있다. 그는 “대출업에서 쌓인 데이터 기술력을 바탕으로 자산운용이나 보험 등으로 확장하며 금융 전반의 변화를 목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꿈꾸는 금융의 변화는 사회의 변화와 맞닿아 있다. 김 대표는 “P2P금융을 통해 학비나 병원비를 대출받는 분들을 접하며 금융은 어느 무엇보다 일상에 많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부분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인터뷰가 끝날 무렵 반원 모양의 저금통을 꺼내 들었다. 김 대표가 렌딧에 앞서 창업했던 사회적기업에서 고안했던 기부 아이템이다. 동전을 넣는 구멍이 두 곳에 있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게 저금해야 반원이 기울지 않는다. 하나는 자신에게 다른 하나는 남을 위해 저금한다는 의미다. 현재 이 저금통은 사회복지법인 ‘아이들과 미래’의 ‘함께 풀다, 1/2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렌딧의 후원하에 제작됐다. 200개의 저금통을 통해 총 500만원이 모이면 말라위 아이들 200명의 축구교육을 지원하는 데 쓰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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