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 기기를 머리에 쓰자 눈 앞에 아찔한 계곡이 펼쳐졌다. 절벽과 절벽을 이은 다리 위였다. 바람 소리까지 귓가를 스쳐가자 움찔했다. 진짜 떨어질 것 같은 불안감마저 들었다.
서울 상암동 누리꿈스퀘어 내 ‘한국 VR AR 콤플렉스(KoVAC)’에서 체험해본 가상현실(VR)이었다. 지난해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렛(MWC)에서 가상현실을 체험해 봤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당시에는 만화 속 주인 공 같았다. 화질도 낮고 초점도 맞질 않아 5분 만에 어지럼증을 느꼈다.
KoVAC에서 체험해본 가상현실은 화질 면에서 개선됐다. 안면부에 부착해야하는 VR기기의 크기는 여전히 ‘우람’했지만 실제 다른 현실에 온 것 같았다.
◇최신 시설로 준비된 ‘코리아ARVR 콤플렉스’
10일 한국의 VR과 AR 산업 진흥을 위해 미래창조과학부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가 상암동 디지털파빌리온에 ‘코리아ARVR콤플렉스(KoVAC)’를 개소했다. KoVAC는 VR과 AR 관련 기술 스타트업에 창업 공간을 제공하면서 이들이 만든 기술과 콘텐츠를 시연하도록 했다. 정부 차원에서 VR과 AR을 적극 육성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시설이다.
상암동 누리꿈스퀘어 내 디지털 파빌리온 2층은 VR과 AR 콘텐츠를 시연하는 장소(테스트 베드), 3층은 입주사들의 개발·업무 공간(VR캠퍼스)으로 구성됐다.
4층과 1층은 오는 5월부터 운영된다. 4층은 민간 기업이 운영하는 VR 게임 체험관이 구축된다. 일종의 VR 체험 방이다. 1층은 VR 스튜디오, VR 장비가 설치된다. 2층 테스트 베드와 연계된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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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식 전 KoVAC를 찾았을 때 입주 업체들과 NIPA 관계자들은 손님 맞이 준비에 바빴다. 3층 VR 캠퍼스에서는 입주한 대학·기업 관계자들이 자신들의 기술을 시연하고 있다. 사무실 안에서는 회의가 한창이었다.
사무실 앞에는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을 시연하는 장소가 있었다. 한 직원이 VR기기를 쓰고 테스트 중이었다. VR기기가 연결된 대형 TV 화면으로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보였다. 현실에 가상의 캐릭터가 활동하는 장면이다. 전형적인 증강현실이다.
AR 테스트 장소 옆으로 장난감 총이 보였다. 현실 속 가상의 캐릭터와 총싸움을 할 수 있는 게임의 도구다.
3층 캠퍼스 안 쪽으로는 모션캡처를 하는 곳이 있었다. 모션캡처는 사람의 움직임을 그대로 애니메이션이나 가상의 캐릭터로 재현하는 기술이다. 머리, 어깨, 손, 발 등 신체 곳곳에 센서를 붙여놓고, 사람의 움직임을 수학적인 값으로 계산한다. 이걸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에 입력하면, 그 캐릭터는 그대로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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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누리꿈 스퀘어 R&D 타워 6층과 11층에 국내 VR·AR 기업들의 육성을 위한 ‘VR 성장지원센터’를 구축한다. 임대료는 무료로 현재까지 18개 스타트업·중소 기업들이 입주해 있다.
정부는 이어 누리꿈스퀘어를 단계적으로 정비해 50여개 이상의 VR·AR 기업을 입주시키겠다는 방침이다. 서울산업진흥원(SBA) 등과 협력해 관련 시설·부지를 확보한다. 정부가 이를 위해 2020년까지 투입하기로 계획한 예산만 400억원이다.
◇정부 기대는 높지만
이날 개소식에는 정부와 연구기관, 업체 쪽 60여명의 인사가 참석했다. 이들은 KoVAC에 높은 기대감을 보였다. 주요 인사로는 최재유 미래부 제2차관, 윤종록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원장,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 박대성 페이스북코리아 부사장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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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미래창조방송통신과학위원회 소속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은 “미래 지향적인 소프트웨어 기반의 젊은이들이 새로 도전할 수 있는 센터가 만들어졌다는 게 의미가 있다”며 “4차 산업 혁명을 이끌어갈 방향으로 정책 전환을 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최재유 미래부 제2차관은 “절대 강자가 없는 VR·AR 시장에서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의 ICT 산업이 지원된다면 최고가 될 수 있다”며 “이곳을 가상현실 클러스터로 조성해서 스타 벤처 기업의 산실로 만들겠다”고 전했다. 그는 2020년까지 2200명의 융합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전했다.
정부는 이같이 다짐했지만 실제 VR과 AR 진흥으로 이어질지 아직 미지수다. VR 체험방 등 실제 VR을 접할 수 있는 장소 상당수가 규제에 걸려있다.
이날 개소식을 찾은 VR체험방 업계 관계자도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선 눈치였다. 그는 “ICT해우소에 실제 시장 상황을 전하려고 왔다”고 말했다.
그는 VR 체험방 규제 완화를 위해 호소하며 정관계를 찾아다녔다. 진흥책도 좋지만 시장 형성을 가로막는 규제 완화가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 그였다. 이날 개소식에서 그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덤덤하면서도 피곤한 표정은 숨기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