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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월세가 뭐길래

조철현 기자I 2014.11.16 15:12:10
[이데일리 조철현 사회부동산부장] 주택 임대차시장에서 전세(傳貰)가 사라지고 있다. 대신 월세가 빠른 속도로 그 자리를 꿰차고 있다. 실제로 서울시내 웬만한 아파트 단지를 들여다보면 전세는 씨가 말랐는데 월세는 넘쳐난다.

‘월세 대세’는 전·월세 거래 통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현재 주택 임대차시장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41.6%에 달한다. 3년 전인 2011년 9월(32.9%)보다 8.7%포인트나 높아졌다. 전세의 월세 전환이 가파르게 증가한 영향이 크다.

거래량도 월세가 전세보다 더 많다.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서울 월세 거래량은 3만3724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만9520건)보다 14.24% 늘었다. 반면 전세는10만713건 거래돼 지난해 동기 대비 2%가량 줄었다. 조금씩 세를 넓히던 월세가 어느새 임대차시장에서 주연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월세가 전세시장을 잠식할 날도 머지않은 듯하다.

문제는 이 같은 전세의 월세 전환이 세입자들의 자발적 선택이 아닌 집주인의 일방적 결정에 따라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전세입자들이 월세로 내몰리는 주요 이유는 저금리 때문이다. 기준금리는 현재 연 2%로, 말 그대로 ‘바닥 금리’다. 집주인 입장에선 전세보증금이 있어봐야 ‘돈’이 되지 않는다. 전세금을 은행에 맡겨봤자 세금(이자소득세 등)과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다.

그런데 보증금을 월세로 돌리면 연 7~8% 정도의 임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 집주인들이 집을 담보로 은행 대출을 받아서라도 보증금 일부를 돌려주고 월세로 돌리는 게 경제적으로 이득인 셈이다. 또 과거 집값 급등기에는 전세보증금을 주택 구입 자금 확보를 위한 지렛대로 활용해 시세 차익을 노릴 수 있었지만 지금은 집값 상승 기대감이 사그라진 상태다.

집주인의 등살에 못 이겨 전세에서 월세로 갈아탄 세입자들은 당장 크게 불어난 주거비 부담에 걱정이 태산이다. 전세를 월세로 전환할 경우 주거 비용이 전세 때보다 2배 이상 늘어난다는 분석도 있다. 월세 전환에 따른 가처분소득 감소는 내수 회복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젊은층은 가처분소득이 줄면서 내 집 마련을 위한 종잣돈을 모을 기회를 박탈당하고, 이미 높은 사교육비 부담을 안고 있는 중장년층은 현재보다 소비를 줄여야 하는 처지로 내몰리기 십상이다.

전세가 월세로 간판을 바꿔 달면서 전셋집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워졌다. 전세 물건 부족은 전셋값을 다락같이 끌어올리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월세 중심의 급격한 임대차시장 구조 변화를 완충시킬 제대로 된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전세난을 잡고 서민들의 주거 부담도 줄여주기 위한 쾌도난마식 해법은 경제학 원론대로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을 늘리는 것이다. 공급이 확대되면 월세 이율이 낮아질 것이고, 이렇게 되면 월세 대신 다시 전세 물건 증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기간에 많은 공공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게 쉽지 않다. 전·월세 보급을 늘리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민간 임대 공급 확대가 꼽히는 이유다.

민간 임대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선 임대 주택의 주요 공급자인 다주택자에 대한 세제 지원이 절실하다. 종합부동산세 등 ‘규제 대못’을 손질해 다주택자들이 임대사업자로 전환할 수 있도록 유인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전세 종말’이 대세의 흐름이라고 해도 월세 전환 속도를 늦추고 경제적 취약계층의 주거 부담도 완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게 정부가 해야 할 최우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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