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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8년 고(故) 최종현 선대회장의 갑작스런 타계 이후 후계 구도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가족들이 최태원 회장으로 뜻을 모으고, 20년간 별다른 갈등 없이 안정적인 경영에 도움을 준 가족들에 대한 ‘보은’의 의미가 담겼다는 분석이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은 최종현 선대회장 타계로 그룹 회장에 취임한 지 20주년을 맞아 그룹 성장의 근간이 되어준 형제 등 친족들에게 지난 21일 지분을 증여했다”고 23일 밝혔다.
최 회장, 약 1조원 지분 가족에 증여
SK그룹에 따르면 최태원 회장은 최근 가족 모임에서 “지난 20년간 형제 경영진들이 하나가 돼 저를 성원하고 지지해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SK그룹과 같은 성장은 없었을 것”이라며 지분 증여를 먼저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에 따르면 지난 5월 최태원 회장 측에서 연락이 왔다.
최태원 회장은 자신이 가진 SK㈜ 지분 1627만주(지분율 23.12%) 가운데 329만주(4.68%)를 동생인 최재원 수석부회장과 큰아버지인 최종건(1973년 작고) 창업주 가족, 4촌·6촌 등 친척 23명에게 증여했다.
그룹 경영권 승계를 양보한 사촌 형 고 최윤원 SK케미칼 회장 가족에게 약 49만주를, 사촌 간 책임경영 기반을 닦은 사촌 형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 가족에게 83만주를 각각 증여했다. SK그룹을 창업한 뒤 1973년 48세의 나이로 일찍 타계한 고 최종건 회장의 4녀 가족 8명에게도 3만7899주씩 증여했다.
특히 최 회장은 총 증여 주식의 절반가량인 166만주를 동생인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에게 증여했다. 가장 많은 주식을 최 수석부회장에게 증여한 것은 자신의 상속분을 포기한 채 SK그룹 성장에 힘을 보탠 동생에게 고마움을 표시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다. 실제 최 회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동생에게는 마음의 빚이 있다”는 말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최 부회장은 현재 수석부회장이란 직함은 있지만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가 2016년 7월 출소한 뒤 그룹 경영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
최태원 회장의 동생인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은 최 회장의 뜻에 공감해 증여에 동참했다. 최 이사장은 최종건 창업회장과 최종현 선대회장의 동생으로서 경영에 참여했던 고 최종관 SKC 부회장과 최종욱 전 SKM 회장의 가족 4명에게 모두 13만여주를 증여했다.
야구장 회동 이어 특유 친족 경영 강화
이번 주식 증여는 SK그룹 특유의 ‘친족 경영’에서 비롯됐다. SK의 전신인 선경을 창업한 건, 최태원 회장의 큰 아버지인 고 최종건 회장이지만 최 창업주가 1973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자 동생인 최종현 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이어받았다. 최종현 회장은 유공(현 SK이노베이션)과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인수 등을 통해 현재 SK그룹의 뼈대를 세웠다.
최종현 선대회장이 1998년 타계했을 당시 또다시 승계 문제가 불거졌는데, 경영권은 최종현 회장의 맏아들 최태원 회장에게 넘겨졌다. 창업주의 맏아들인 최윤원 회장이 당시 양가 2세 6남매(최윤원·신원·창원·태원·기원·재원) 등이 모인 가족모임에서 맏형 자격으로 최태원 회장의 경영 능력이 가장 뛰어나다고 판단, 최태원 회장을 추대하는 합의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최씨 가 5형제들 사이에 상속 문제로 분란이 있었다면 IMF 위기 때나 소버린 사태 등과 같은 경영권 분쟁 당시 SK그룹이 해체되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렀을 수도 있었다는 게 재계의 평가다.
이번 증여를 마치면 최태원 회장은 그룹 지주회사인 SK㈜ 지분이 23.12%에서 18.44%로 내려간다.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 지분율도 7.46%에서 7.27%로 감소했다. 최 부회장은 형에게 받은 주식으로 지분율 2.36%를 확보하면서 3대 주주로 뛰어올랐다. 하지만 최대주주로서 그룹 지배력에는 변동이 없다. SK그룹 측은 “이번 증여는 계열 분리와는 관련이 없으며 최태원 회장 중심의 현 그룹 지배구조도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12일 저녁 서울 잠실 야구장 SK와 두산 경기에선 SK 일가 4형제가 한꺼번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최태원(58) SK그룹 회장과 최신원(66) SK네트웍스 회장, 최재원(55) SK그룹 수석부회장, 최창원(54)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은 나란히 야구장에 나타나 형제애를 과시했다. 최태원 회장이 야구장을 방문한 건 2011년 이후 7년 만이다. 재계 안팎에선 SK네트웍스 등이 일부 계열사와 함께 SK그룹에서 떨어져 나갈 것이란 관측이 있었으나, 이런 전망을 일축하는 이벤트가 됐다.
업계에서는 이번 증여로 최 부회장 등 친족들이 내야 할 증여세가 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증여세로는 사상 최대 규모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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