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 외부후원금 이사회 의결 …SK도 같은 방법 채택
삼성전자(005930)는 지난 24일 열린 이사회에서 10억원 넘는 외부 후원금과 사회공헌(CSR)기금 지출 시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또 외부 후원 내용이 이사회를 통과하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하기로 했다. 이사회 의결 대상은 정부를 포함한 외부 단체 요청 기부·후원·협찬 등과 삼성전자 사회봉사활동, 산학지원, 그룹 재단을 통한 기부 등이다.
삼성전자가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된 배경은 ‘최순실 게이트’ 다. 삼성이 정부 요청으로 지원했던 미르·K스포츠재단이 ‘국정농단’의 주역인 최순실씨 등의 손아귀에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분을 샀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최씨 등을 불법 지원한 혐의(뇌물공여 등)로 구속 수사를 받게 됐다. 삼성의 투명 경영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삼성은 비교적 적은 액수의 사회공헌 사업까지 이사회 의결을 거치는 초강수를 뒀다.
삼성의 이사회 결의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른 대기업으로도 퍼지는 분위기다. 최씨를 지원했던 다른 대기업도 따가운 눈초리를 받았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움직인 건 SK(034730)그룹이다. SK는 계열사인 SK텔레콤(017670)과 SK하이닉스(000660)도 같은 날 10억원 이상 기부금 지출 시 이사회에 의결하기로 결정했다. 대신 일일이 의결 사항을 공시하지는 않기로 했다.
SK 관계자는 “우선 두 계열사에 10억원 이상 사회공헌사업 지출이 발생하면 이사회에 의결하는 방안을 도입했다”라며 “다른 계열사에서도 일부 검토하거나 준비 중이며 시기나 방법 등을 정하진 않았다”라고 말했다.
◇몇백억원 단위 지원 사라질 듯…정상적 사업도 위축 우려
재계는 삼성이 외부 후원을 줄이면 다른 기업도 비슷한 길을 걸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동안 국내 대기업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삼성이 사회 공헌 기금도 가장 많이 부담했다. 정부가 기업에 사회공헌 사업이나 재단 모금을 요청하면 항상 삼성이 얼마를 내는지에 따라 각 기업의 모금 액수가 결정됐다.
재계 관계자는 “이른바 수재의연금 비율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삼성이 내는 수재의연금을 보고 다른 기업도 따라한다”라며 “미르·K스포츠재단에 낸 비율도 삼성이 낸 금액을 기준으로 다른 기업도 갹출하지 않았는가”라고 말했다.
다만 그동안 정상적으로 대규모 후원 사업 등은 사라지거나 대폭 축소될 가능성이 커졌다. 우선 가장 타격을 입을 사회공헌사업은 정부 산하 단체의 ‘연말 이웃사랑 성금’이다. 삼성이 1999년부터 지난해까지 17년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낸 성금 규모는 4700억원이다. 삼성은 국내 전체 기업을 통틀어서 가장 많은 성금을 냈다.
또 삼성은 지난해 말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100억원대 규모 사회복지 공모사업인 ‘나눔과 꿈’도 진행 중이었다. 이 사업은 사회복지, 환경, 문화, 글로벌 등 4대 분야에서 51개 비영리단체를 선정하고 총 100억원의 사업비를 지원했다. 지난해 처음 시작한 이 사업이 올해에도 진행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SK도 사회공헌재단인 ‘행복나눔재단’을 운영 중이다. 이 재단은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사회적 기업 1052개를 발굴해 52억원을 지원했다. 또 1973년부터 40년 넘게 EBS에서 방송한 ‘장학퀴즈’는 지금까지 장학생 3300여명을 지원한 SK의 대표적인 인재 발굴·지원 프로그램이다. 이외에도 2015년 8월 저소득 노인층의 주거 복지를 개선하는 데 1000억원을 기부했다.
업계 관계자는 “외부 출연금이나 기부금 등을 투명하게 집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면서도 “그룹 차원에서 이뤄지던 큰 규모의 기부는 위축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