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공동취재단·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2차 이산가족 상봉행사의 첫 만남인 단체상봉을 앞둔 금강산호텔. 북측에서 나온 한음전(87) 할머니는 자수가 놓인 은은한 흰 저고리에 자주빛 한복 치마를 곱게 차려입고 휠체어에 앉아 문쪽만을 응시했다. 아들과 조카와 함께 나왔지만 테이블에는 정적만이 흘렀다. 한 할머니는 까닭 없이 흐르는 눈물을 간간이 찍어내고 있었다.
한씨가 애타게 기다리는 이는 남편 전규명(86) 할아버지. 1950년 6.25가 터지면서 북한 의용군에 강제 징집돼 그해 포로로 잡혀 생이별을 했던 ‘신랑’이었다.
마침내 문이 열리고 65년만에 만난 노부부는 한동안 입을 떼지 못했다. 몇 시간 같은 5초간의 정적을 먼저 깬 건 남편이었다. 전 할아버지는 중절모를 고쳐 쓰며 정중하게 “나 전규명이요” 하고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한 할머니는 수줍은 듯 “나는 한음전”이라고 새초롬하게 답했다. 꽃다운 나이 선남선녀가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말이다.
65년만에 ‘신부’를 만난 전 할아버지는 “아, (옛날) 그대로 이쁘네”라며 한 할머니의 손을 꼭 쥐었고, 아내 역시 조용히 남편의 손을 포개 잡았다.
그렇게 마주 잡은 손으로 서로의 마음을 느끼면서 노부부는 지난 긴 세월의 무게를 조용히 떨어냈다. 남편은 이내 아내의 뺨을 어루만지며 “어떡해, 이뻐서”라며 애틋한 눈길을 보냈다. 아내는 휠체어에 앉은 남편의 다리를 걱정스럽게 쓰다듬으면서 “당신 죽은 줄로만 알고 살았어. 간 줄 알았어”라며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아내의 흐느끼는 모습을 보며 “이제 죽어도 원이 없다”는 전 할아버지에게 한 할머니는 같이 온 아들 전완석(65)씨를 소개했다. 남편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후 석달만에 홀로 낳은 아들은 이제 환갑을 훌쩍 넘겨서야 아버지와 처음으로 만났다.
아들 전씨로부터 헤어진 후 한 할머니가 홀로 아들을 키우며 재혼도 하지 않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전 할아버지는 “그렇게 고왔는데… 왜 결혼 안 했어”라며 미안하고도 고마운 마음이 뒤섞인 복잡한 심경을 비쳤다.
남편의 타박 아닌 타박에 한 할머니는 감정이 복받친 듯 남편의 어깨를 툭툭 때리며 “왜 사진 하나 안 찍어놓고 갔어. 사진 하나라도 찍어놓고 가지”라며 “쟤(아들)한테 아버지라고 보여줄 게 아무것도 없었어”라며 회한을 쏟아냈다.
사진 한 장도 남기지 못 하고 갑자기 사라진 남편을 기다리며 외롭게 버틴 지난 세월이 한 할머니의 머리 위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남편은 그런 아내를 가만히 바라보며 “원한이 없다”라고 했고, 아내는 “나도. 죽어도”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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