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자통법)①한국 금융 미래가 달렸다

전설리 기자I 2007.04.10 10:30:00

"외환위기때 빼앗긴 국부를 찾아올 기회가 오고 있다
선진형 금융시스템 못갖추면 `금융허브` 꿈도 물거품"

[이데일리 전설리기자] 한국금융의 운명을 결정하게 될 자본시장통합법이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그동안 치열하게 전개됐던 각계 각층의 의견수렴 과정도 막바지에 돌입했다. edaily는 자본시장통합법의 제정을 앞두고 법 제정의 필요성, 법안에 담긴 내용, 그동안의 쟁점 등을 4회에 걸쳐 점검한다. (편집자주)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전세계 유수 투자 은행들에 많은 이익을 내줬습니다. 국부를 빼앗겼다고 분개하지만 그들로서는 높은 리스크를 건 만큼 많은 수익을 가져간 겁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인 셈이죠.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우리도 금융 경쟁력을 키워야 합니다”

“중국 시장이 감기 기운을 보이면 우리 증권 시장은 몸살을 앓습니다. 미국 시장의 영향은 말할 것도 없지요. 세계적으로 주가 동조화가 진행되고 있는 이 시대에 경쟁력을 키우지 못하면 우리 자본 시장은 위험해집니다”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치열한 두뇌 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대형사, 중소형사 가릴 것 없이 다가올 허리케인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을 짜고 있는 것이다. 허리케인의 실체는 바로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

허리케인이야 피하는 게 상책이지만 자본시장통합법은 그렇지 않다. 증권업계는 오히려 한 목소리로 자통법 도입 진통을 겪겠다고 나서고 있다.

배경에는 세계화라는 거스를 수 없는 추세 속에 한국 금융업계도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도태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깔려 있다.
 
당장의 변화를 두려워하다가 내 집 살림 관리 전체를 내어줘야 할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다.

◇세계 자본시장 “우리는 혁신 중”

세계 자본시장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세계 금융시장을 주름잡는 미국마저도 위기감을 느끼고 있을 정도다.
 
미국 상공회의소는 최근 `21세기 미국 자본시장에 대한 규제`라는 보고서를 발표, 규제 개혁의 필요성을 논의했다.

미국 뿐만 아니다. 주요 선진국들은 최근 자본시장통합법을 도입, 자본시장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금융 선진국이라 일컬어지고 있는 영국은 1986년 자본시장통합법(Financial Services Act)을, 2000년 통합금융법(Financial Services and Market Act)을 도입해 국제 금융센터의 위상을 확고히 했다.

호주는 지난 2001년 금융서비스개혁법(Financial Services Reform Act)를 도입, 자본 시장이 두 배 성장하는 성과를 거뒀다.

가까운 나라 일본도 지난해 증권거래법을 개정, 금융상품거래법을 마련했다. 법 제정에 신중한 일본임에도 자본시장 육성의 중요성을 인식, 이례적으로 조속히 입법을 추진했다.
 
싱가포르와 홍콩도 2002년과 2003년 각각 자본시장 관련 법률을 통합했으며 중국, 대만, 두바이는 금융 허브를 정책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

전상경 한양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기고문을 통해 “세계 최고 금융 시스템을 자랑하는 미국이 느끼고 있는 금융산업 위기감과 비교하면 한국은 여전히 한가롭다”며 “이제야 마련된 자본시장통합법마저 소액 지급 결제라는 문제에 부딪혀 추진되지 못하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토로했다.

증권업협회 관계자도 “최근 세계 경제와 각국의 관련 법제 개혁 및 금융 허브 구축 노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여·야간 정치 논리 등 소모적인 논쟁으로 헛되이 보낼 시간이 없다”며 자통법의 조속한 입법을 촉구했다.

◇`동북아 금융 허브`..그 기회의 땅

정부는 `동북아 금융 허브`를 국정 과제로 확정, 2015년까지 3단계 전략을 추진중이다. 외환 위기를 겪으며 세계 유수 투자은행들에 막대한 이익을 내준 뼈 아픈 경험을 되새겨 이제 우리도 이 분야에서 기회를 포착해 보자는 전략이다.

실제 업계 관계자들도 `여건만 된다면 기회가 충분한 땅`이라고 입을 모은다. 굿모닝신한증권 경영기획팀 소속으로 자본시장통합법 테스크포스팀을 이끌고 있는 박찬영 팀장은 “우리 금융사들이 외환 위기 때 빼앗긴 국부를 되찾을 기회를 머지 않아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찾을 수 있다”며 “동남아시아는 글로벌 플레이어들이 뛰어들기에는 너무 작지만 우리에겐 충분한 열매를 제공해 줄 적절한 규모의 시장”이라고 말했다.

중국 시장도 무르익고 있다. 박 팀장은 “우리나라가 올림픽을 치르고 나서 크게 성장했듯 중국도 베이징 올림픽 이후 한 단계 도약할 것”이라며 “이 또한 우리 금융업계에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국내 자본시장이 선진형 금융시스템을 갖추지 못하면 `동북아 금융 허브`의 꿈은 물거품이 될 전망이다.
 
증권업협회 관계자는 “금융 허브 구축을 위해서는 제도적 인프라 정비를 통해 선진형 금융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 자본시장통합법 도입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변화하는 금융 환경..`발 묶인` 자본시장

해외 시장에서의 기회 활용도 중요하지만 빗장이 열리고 있는 국내 시장 단속은 더욱 중요하다. 당장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 미국 증권사들이 경쟁력 있는 금융 상품을 국내에 선보일 수 있게 된다.

국민들의 노후 생활도 자본시장 발전에 달렸다. 고령화 사회로의 진전 속에서 국민연금·기업연금·개인연금 등 자산 운용이 효율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그 운용의 장인 자본시장의 발전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우리 자본시장은 규제에 발이 묶여 발전이 미흡한 상황이다.

실제로 기업의 자본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은 지속적으로 위축되고 있다. 주식을 통한 자금 조달은 지난 2000년 14조원에서 2005년 7조원으로 반토막 났고, 회사채를 통한 자본 조달도 지난 2001년 87조원에서 2005년 48조원으로 급감했다.
 


수익성 측면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2005년 증권사들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은 7.1%. 같은 기간 19.6%를 기록한 은행에 비하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 은행은 구조조정을 거치며 19개사로 줄었지만 자산운용사와 증권사는 아직도 38개사, 44개사에 이른다. 출혈 경쟁 속에 수익성이 나아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투자은행과 비교하면 경쟁력은 더욱 떨어진다. 국내 증권사의 상위 6개사 평균 자기자본 규모는 1.7조원. 메릴린치 31조원, 모간스탠리 28조원, 골드만삭스 25조원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박종철 한화증권 전략기획 팀장은 “우리나라의 전체 금융 시장은 은행에 치중돼 있다”며 “한쪽에 치우친 발전은 국가 경제에도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선진국과 같이 은행·증권·보험의 균형적인 발전을 이뤄나가는 것이 바람직한다”고 역설했다.

증권업계는 경쟁력 확보를 위해 규제 개혁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우선 금융상품 개발을 막고 있는 `열거주의`를 `포괄주의`로 풀고, 칸막이식 업무범위 제한을 완화시켜 달라는 주문이다.

한화증권 박 팀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증권사가 취급 가능한 금융상품인 유가증권이 열거주의로 규정돼 있어 신상품을 개발할 때마다 우선 법률부터 뜯어고쳐야 한다”며 “이에 따라 경쟁력이 떨어짐은 물론 다양해지는 소비자들의 니즈에 대응하기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박 팀장은 “증권 관련 업무의 상호간 겸업에 대한 엄격한 제한도 창의적 신상품 개발을 막고 있다”며 “다양한 금융상품을 만들 수 있도록 포괄주의를 도입하고 칸막이식 업무범위 제한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숨겨진 8000억원을 투자자에게

소비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서도 자통법 도입은 필수적이다.

증권업협회 관계자는 “현행법상으로는 증권사, 선물회사, 자산운용사, 신탁회사 등 금융 회사별로 각각 별도의 법률이 존재해 동일한 금융 기능을 수행해도 상이한 규제가 적용돼 투자자 보호의 공백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자통법 입법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증권사 소액 지급 결제가 허용되면 연간 8000억원의 이자 혜택이 투자자들에게 돌아갈 전망이다.
 
금융연구원은 증권사에 자금 이체 업무를 허용할 경우 지난 2005년말 기준 100조원에 달하는 은행권 저축예금 중 20% 안팎인 20조원이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등 증권계좌로 이동할 것으로 전망했다. 은행 보통예금 금리 0.3%와 증권사 CMA 금리 4.3%의 금리차 4%포인트를 20조원에 적용할 경우 연 8000억원의 이자소득이 금융 소비자들에게 돌아간다는 계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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