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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정현 기자]장면 하나. “지금… 이 순간.” 나직이 시작한 첫 구절에 객석에 앉은 모든 이들이 자세를 바로잡았다. 의자 깊숙이 몸을 누운 관객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한 마디라도 놓칠까 두 손을 맞잡고 무대를 바라봤다. 오랫동안 이어진 고뇌를 끝낸 주인공이 부르는 노래.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상징인 배우 조승우가 부르는 ‘지금 이 순간’의 객석 풍경이다.
장면 둘. 무대가 내려온다. 나른한 걸음걸이로 내려온 그가 긴 숨을 내뱉으며 손을 내밀었다. 여운은 길고 유혹은 치명적이다. 황후의 마음을 뺏으려는 환상의 존재. 지금은 다른 이의 여자이나 결국은 자신과 함께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넘친다. 가수 겸 배우 김준수가 부르는 뮤지컬 ‘엘리자벳’의 넘버 ‘마지막 춤’이다. 뛰어난 가창력과 안무 소화력으로 유독 빛난다.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성이 당연하다.
김준수는 2년 만의 뮤지컬 무대이며 5년 만의 ‘엘리자벳’이다. 조승우 역시 2년 만에 다시 ‘지킬 앤 하이드’에 출연했다. 한국 뮤지컬을 대표하는 두 거물의 역량은 의심할 바 없다. 마치 용과 호랑이의 다툼을 보는 듯 경쟁하며 연말 공연계를 달군다.
‘지킬 앤 하이드’는 영국의 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의 이상한 사건’을 원작으로 선의 지킬과 악의 하이드로 대표하는 인간의 이중성을 다룬다. 내년 5월 19일까지 서울 송파구 잠실동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한다. 홍광호·박은태·윤공주·아이비·해나·이정화·민경아·등이 함께한다. ‘엘리자벳’은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엘리자벳과 가상의 인물인 죽음의 러브스토리를 그린다. 지난달 서울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에서 개막해 내년 2월 10일까지 이어간다. 김준수를 비롯해 옥주현·김소현·이지훈·신영숙·박형식·정택운·강홍석·박강현·이 출연한다.
조승우는 ‘지킬 앤 하이드’를 “도전할 만한 가치를 주는 작품”으로 꼽았다. 그리고 “보물찾기를 하듯 전에 못 느꼈던 감정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고 공연을 기대했다. 김준수는 “‘엘리자벳’의 죽음 역으로 다시 무대에 오를 수 있어 행복하다”며 “관객 여러분께서 오랜 시간 기다려준 만큼 잊지 못할 멋진 공연을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공연 후 평가도 후하다. ‘엘리자벳’의 원작자인 실베스터 르베이는 김준수가 출연한 공연을 보려 내한했다. 이후 김준수의 대기실로 찾아가 “감정선과 드라마 모두 업그레이드하며 음악을 완성했다”며 “등장할 때의 아우라와 숨결을 내뱉을 때 마법 같은 사랑의 순간을 느끼게 했다”고 칭찬했다.
지혜원 공연평론가는 “‘지킬 앤 하이드’에는 조승우, ‘엘리자벳’이면 김준수가 떠오를 정도로 브랜딩이 확실하다”며 “새로운 시즌이 이어질 때마다 기대치가 커진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출연하는 공연티켓은 예매를 시작하자마자 모두 팔렸다. 웃돈을 주고도 보기 어려울 정도로 인기다. 다년간의 활동과 뛰어난 역량으로 팬덤을 쌓은 덕이다. 수차례 관람을 반복하는 이른바 ‘회전문 관객’을 비롯해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뮤지컬 관객, 바다 건너 공연을 보러온 외국인 관광객 등 인기 아이돌의 콘서트 현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인파가 몰린다. 김준수는 한류그룹인 JYJ의 멤버인 만큼 외국인 예매율이 높다. 2010년 뮤지컬 ‘모짜르트’ 출연 당시 최초로 러닝개런티를 받았을 정도다. 최근에는 조승우까지 기본 개런티 외에 유료 관객 점유율이 일정 비율 이상을 돌파하면 러닝개런티를 받는 조건으로 계약한다. 백새미 인터파크 공연사업부장은 “‘지킬 앤 하이드’와 ‘엘리자벳’은 흥행이 검증된 작품”이라 평가하며 팬덤 영향력이 큰 배우들이 출연해 티켓 구매가 뜨거웠다고 했다.
△‘지킬 앤 하이드’의 ‘지금 이 순간’
지킬 박사가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금지된 실험을 하기 직전에 부르는 넘버다. 정신분열증을 앓는 아버지와 환자들을 구하기 위해 힘써온 그의 결심을 보여준다. 지킬과 하이드로 분열한 자아끼리 다투는 장면과 함께 명실공히 ‘지킬 앤 하이드’의 명장면이다. 프랭크 와일드혼이 작곡했다.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뮤지컬 곡으로 꼽힌다.
△‘엘리자벳’의 ‘마지막 춤’
자신이 아닌 황제를 택한 것에 화가 난 죽음이 다시 엘리자벳을 유혹하며 부른다. 지금은 황제의 곁에 있지만 마지막에는 자신과 함께 춤을 추며 깊은 어둠으로 빠질 것이라 암시한다. 마치 독수리가 먹잇감을 노리는 듯 검은 날개를 휘날리는 앙상블과 함께한다. 가창력과 더불어 격렬한 안무도 함께 소화해야하는 고난도 무대다. 실베스터 르베이가 작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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