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그렇다. 무슨 일만 터지면 모두가 정부를 바라본다. 특히 불특정다수의 소비자가 피해를 입는 상황이면 더 기민하게 움직인다. 티메프 사태가 대표적이었다. 사고는 플랫폼이 쳤는데 그 책임은 카드사와 페이사가 같이 떠안아야했다.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나 독일 국채금리와 연계된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등 금융상품에서 대규모 손실이 터졌을 땐 불완전판매를 이유로 금융사가 상당금액을 배상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그러니 금융에서 사고가 터지면 모두 정부와 당국 바라기가 되는 게 당연해졌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서도 하이 리스크라는 것을 기관투자자들이 몰랐겠는가. 리스크를 감수하면 더 큰 돈을 만질 수 있으니 너도 나도 뛰어들었던 거고, 갈수록 시장이 과열되는 상황에서 레고렌드 사태가 터지고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고 금리가 급등하면서 동시다발적으로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정부와 금융당국의 대처로 우려했던 것보다 시장은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 올해 신용평가 전문가 설문(SRE)에서 커버스토리 이슈를 잡기가 어려울 정도로 말이다. 레고랜드 사태가 터졌던 재작년, 부동산 PF 위기로 건설사 부도설과 PF 만기연장 실패 소식이 잇달아 들렸던 작년에 비해 올해는 비교적 조용한 한해를 보냈다. 그래서인지 올해 SRE 자문단 회의도 예년보다 일찍 끝났다.
정부가 부동산PF에 대한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잠재적인 부실 사업장을 추리고 공경매 등을 통해 처리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금융권은 이에 따른 충당금을 이미 상당부분 반영했다. 금리인하 기대를 선반영해 시장금리도 하락했다.
그런데 이런 상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장담할 수 없다. 얼마전 치러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다시 당선됐다. 집권 1기에 비해 트럼프 2.0은 더 매운맛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감세와 규제완화, 관세부과를 공약으로 내건 만큼 글로벌 무역전쟁이 다시 발발할 수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는 가운데 우리나라와 같이 수출의존적인 국가는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대규모 재정정책으로 시중에 돈이 다시 풀리고 물가가 들썩이면 연준의 금리인하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
무엇보다 금융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불확실성이 극도로 높아졌다.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4%대로 올라섰고 원달러 환율은 1400원을 뚫었다. 그 어느때보다 리스크 관리가 중요해졌다. 일 터진 후 정부만 바라보는 사후약방문 보다 스스로 알아서 대비하는 유비무환의 자세가 필요한 시기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35회 SRE(Survey of credit Rating by Edaily) 책자에 게재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