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 존폐 논란 속…사육사 “멸종위기동물 등 보존 활동” “야생성 잃어버린 동물들…자연으로 보내도 살기 어려워” 동물복지 위해 사육사 처우개선 시급…관람문화 바뀌어야
지난달 대전 오월드를 탈출한 퓨마가 44시간여 만에 사살되면서 청와대에 “동물원을 폐지해주세요”라는 청원의 글이 올라왔다. 글이 올라오자마자 6만명이 넘는 국민이 동참했다.
최초 청원자는 “야생동물을 마음대로 데려와 환경을 맞춰준다 해도 원래 살던 영역의 1만분의 1도 안 되는데”라며 “야생동물이 동물원에 있는 것은 보호가 아니라 고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온라인에선 동물원 존폐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동물을 관리하는 사육사들이 이번 사태를 보면서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동물 사육사 관련 업계 종사자들은 “동물원 개편에는 동의하나 동물원 폐지는 있어서는 안 될 주장”이라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동물원 폐지하면 동물들 갈 곳이 없어요”
사육사들은 야생성을 잃어버린 동물을 자연으로 돌려보낸다 해도 적응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미 인간의 손에 터전을 잃어버린 동물들이 대부분이어서 보금자리로 삼을 만한 곳이 없다는 설명이다.
수도권의 한 동물원에서 사육사로 근무하고 있는 배성주(25)씨는 “동물원이 없어진다 해도 이 동물들이 다시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다”며 “사람들이 자연을 너무 많이 훼손해 동물들이 보금자리로 삼을 곳이 없다”고 말했다.
사육사들은 동물원의 기능을 재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멸종위기종의 보호와 개체 수 연구 등을 확대해 동물관리의 전문성을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에버랜드의 한 관계자는 “에버랜드에서는 황금머리사자 타마린은 물론, 치타, 기린과 같은 세계적인 멸종위기 동물들이 잇따라 출생하고 있다”며 “이러한 동물관리 전문성과 번식 노하우를 바탕으로 희귀동물 연구와 종 보전 활동을 더욱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언급했다.
에버랜드에서는 국제멸종위기종 1급으로 전 세계에 1000마리밖에 남지 않은 ‘황금머리사자타마린’을 보전하기 위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동물들의 개체 수와 서식지는 감소하고 있다. 프랑스 ‘노트르 플라넷’은 호주에 서식하는 코알라 개체 수가 2세기 만에 99% 급감했다고 보도했다. 해당 관계자들은 도시화로 서식지 감소·기후변화·질병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상업적 수단으로만 보는 동물원 경영에도 문제가 있다고 사육사들은 지적한다.
사육사 경력 5년 차인 김혜정(27)씨는 “경영자들이 동물원을 상업적인 수단으로만 보고 사육시설 규정을 지키지 않다 보니 동물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고통받거나 탈출하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사육사는 “지난해 개정한 동물원수족관법은 동물원 설립과 운영의 근거만 마련했을 뿐 적절한 사육환경이나 관리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다”며 “점검제도뿐만 아니라 처벌할 근거도 없다”고 덧붙였다.
사육사 처우개선 시급
작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개최한 동물원법 개정을 위한 국회토론회에서는 동물복지 향상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사육사의 처우개선이 논의됐다.
정지윤 한국수족관발전협회 사무국장은 “사육사가 행복해야 동물이 행복해질 수 있다”며 “관련 업계의 발전과 행정제도가 함께 가야한다”고 말했다.
지난 2010년 서울대공원 사육사의 연봉은 1800만원이었다. 경력이 오래 쌓여도 2700만원에 불과했다. 이들은 모두 계약직이다.
문대승 서울연희실용전문학교 교수는 “학교를 졸업하고 사육사가 된 제자들의 처우가 그리 좋지는 않다”며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출발한 사육사의 길에서 동물 학대 논란이 나오는 것은 열악한 환경의 영향도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동물원법 제정안을 자문했던 이소영 변호사는 “(현행법이) 사육사의 인명사고, 관람 명목의 전시동물 훈련 중 발생한 학대, 폐업 업소 정리 등 동물원 운영 등과 관련한 내용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규모에 따라 일정 수 이상의 사육사를 확보해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것도 필요하다”며 “종사자의 안전을 위한 시설관리규정도 세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람문화도 바뀌어야
동물을 직접 만질 수 있는 체험형 동물원이 점점 늘고 있다. 사람에게 즐거운 경험이지만 동물들에게는 끔찍한 순간이다.
김혜정 사육사는 “마냥 만져보는 체험을 관람객 스스로 지양해야 한다”며 “사육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동물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교육형 동물원을 지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만지지 마세요·먹이를 주지 마세요 등이 적혀있는 안내판을 꼭 지켜야 동물들이 스트레스를 덜 받으면서 함께 즐길 수 있는 동물원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