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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제가 다시 불안에 떨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에 상속세 기준 변경까지 더해지며 ‘아파트 짓기’ 붐이 일어나고 있다. 다만 세입자를 찾지 못하는 집들이 급증하며 빚더미에 앉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 “지금 日 어딜 가도 세입자를 찾지 못하는 집이 있다”
일본은행(BOJ)은 지난해 일본 전역의 부동산 대출이 2015년보다 15% 증가한 12조2806억엔(123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통계가 작성된 1977년 이후 최고치다. 뿐만 아니라 임대주택의 신설 착공건수도 41만8543건으로 집계됐다.
부동산 대출이 증가한 이유는 단연 ‘낮은 금리’ 때문이다. 지난해 1월 BOJ가 일본 금융 역사상 최초로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겠다고 밝혔고 이내 모기지 금리는 1%대로 내려왔다. 금리 부담이 낮아지자 집 장만을 하려던 투자자들의 대출 신청이 잇따랐다.
부동산 세제 변경도 한몫했다. 지난 2015년 일본의 상속세 기준이 바뀌며 건물이 들어선 땅이 건축물이 없는 밭이나 공터 등 택지보다 과세액이 낮아졌다. 이에 땅 주인들은 세입자를 받을 수 없는 지역까지 상속세를 줄이기 위해 일단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여기에 일본 지방은 행들이 저금리에 예금을 통한 수익 확보가 힘들자 대출 홍보에 나섰다.
문제는 일본의 인구가 줄어들며 세입자를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미에현 쓰역 주변에 2억엔을 대출받아 아파트를 지었다는 한 70대 남성은 “붐이라며 여러 부동산업자에게서 건축 제안을 받았다”며 “지금은 어디를 가도 (세입자를 찾지 못한) 빈집이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인구 유입이 없는 지방까지 건설 붐이 일어나며 공급이 과잉된 상태다. 이에 집주인들은 대출을 받아 집을 지었지만 대출액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이시카와현에서 대출을 받아 아파트 2채를 구입한 한 60대 남성은 임대료 수입이 계속 줄어들자 결국 아파트를 팔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빚 3000만엔이 남았다.
◇ ‘잃어버린 10년’ 다시 오나..희미한 버블의 그림자
1980년대 후반 일본 경제는 뭘 해도 통한다는 최고의 호황기를 누렸다. 경제가 성장하며 주가는 급등하고 땅값이 오르자 떼돈을 번 사람들은 소비를 즐겼다. 기업들도 접대비와 보너스를 풀어댔다. 실제로 도쿄 시내인 긴자에서는 술자리 이후 1만엔 짜리를 흔들어도 택시를 잡기 힘들 정도로 어디서나 돈을 쓰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하지만 1990년 4월 부동산 대출을 규제하는 ‘부동산대출 총량 규제’가 시작되며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저금리를 빌미로 토지에 투자했던 기업들의 줄도산이 이어졌고 대출을 받아 빌라를 짓던 사람들은 하우스푸어로 전락했다. 1991년부터 도산하는 건설업체와 부동산업체가 급증했다. 잃어버린 10년의 시작이었다.
최근 5~6년간 일본 경제는 살아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호황을 ‘제2의 버블’로 보는 시선도 많다.
2012년 12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두 번째 부임을 하며 엔화 가치를 낮추는 아베노믹스‘를 펼쳤다. 이에 제조업 위주의 기업들은 수출경쟁력을 확보했고 닛케이225지수는 다시 2만선을 찾으며 순항했다. 일본을 찾는 관광객도 급증했다. 그러나 아베노믹스가 장기화되며 일본 정부의 부채가 급증하는고 있다. 게다가 최근 아베 총리가 모리토모 학원 스캔들 등 각종 비리와 얽히며 지지율이 급락하고 있다. 아베노믹스를 이끌만한 동력도 부족해지고 있다는 게 일본 정계의 평가다.
노구치 유키오 외세다대학교 금융종합연구소 교수는 “버블 시대의 교훈을 잊고 다시 과거를 되풀이하고 있다”며 “과거보다 더 우려스러운 게 지금 일본 경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