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좌동욱기자] 금융감독당국이 시중에 돈이 돌지 않는 문제를 풀기위해 15일 시중 은행장들과의 워크숍에서 도출한 해법은 크게 두가지다.
올해 만기 도래하는 160조 규모의 중소기업 대출을 전액 만기 연장하는 대책과 은행들의 자본확충펀드 활용도를 높이겠다는 방안이다.
이는 은행들의 무분별한 자산 회수를 방지하면서도 은행 건전성 비율이 떨어질 경우 대비책을 확실히 마련하겠다는 정책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 자본확충펀드 필요할 때 갖다 쓴다
이번 워크숍에서 도출한 합의 중 하나는 지난 두달여간 끌어왔던 자본확충펀드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점이다.
정부는 이번 워크숍을 통해 자본확충펀드를 한도배정 방식(크레딧 라인 개설)으로 신청받겠다는 방침을 확정했다. 은행들이 향후 필요한 자본확충 규모를 자체적으로 파악, 최대 한도를 정해놓고 필요할 때 펀드를 활용할 수 있는 구조다.
이런 방식은 지난해 시중은행들이 정부의 외화 차입 지급보증을 받을 때 은행별로 지급보증 한도를 받은 후 실제 은행들이 외화차입을 할 때 건별로 지급보증을 받도록 한 방식과 유사하다.
이는 자본확충펀드를 통해 선제적으로 은행들의 재무 건전성 비율을 최대한 끌어올리겠다는 정부 의지와 경영권 간섭 등을 우려해 정부 지원은 최대한 배제하겠다는 은행권 입장이 절충된 결과로 풀이된다.
은행 입장에서는 자본확충펀드를 신청할 경우 은행 자산 건전성이 나빠진 것이 아니냐는 외부의 `평판리스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
지난해 은행들이 후순위채나 하이브리드 채권을 발행, 이미 금융감독당국의 권고하는 수준 이상으로 건전성 비율을 끌어올린 점도 고려됐다.
정부 입장에서는 향후 예기치 못한 비상 상황을 대비해 국내 은행들의 자산 건전성을 높일 수 있는 비상 파이프 라인을 확보하겠다는 애초의 정책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됐다.
자본확충펀드 출범 시기가 당초 목표보다 한달간 늦어진데다, 시중은행들이 자본확충펀드 활용을 꺼릴 경우 실패한 정책이라는 비판도 의식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자본확충펀드를 신청할 경우 평판리스크를 걱정해야 하는 은행들의 우려와 불필요한 금융조달 비용을 줄일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은행권 요구를 수용, 신청 방식을 한도배정 방식으로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 당장 자본확충펀드 신청 은행 많지 않아
자본확충펀드 활용에 따른 은행들의 부담이 줄면서, 자본확충펀드를 신청하는 은행수는 당초 예상보다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일 워크숍에 참석했던 산업은행, 기업은행(024110), 우리은행, 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씨티은행, 광주은행, 농협 등 9개 은행연합회 이사 은행장들은 자본확충펀드를 신청하겠다는 의사를 금융당국에 내비쳤다.
당초엔 우리은행이나 기업은행 등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소유한 은행들만 자본확충펀드를 신청하겠다는 입장이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국민, 하나, 신한, 우리은행 등 국내 4대 메이저 은행들이 모두 자본확충펀드를 신청하겠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이런 은행들의 결정이 다른 시중은행들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시중은행들이 자본확충펀드의 크레딧 한도를 배정받더라도 당장 펀드를 활용해 자본을 확충할 은행들은 많지 않다는 분석이다. 국내 은행들은 작년 10월 정부로부터 총1000억달러 규모의 외화차입 지급보증을 받았지만 실제 정부 지급보증을 활용해 외화를 조달한 은행은 한곳도 없었다.
정부는 자본확충펀드의 구조나 운영방식은 기존 구상대로 끌고간다는 방침이다. 자금 조달 방식도 은행들의 신청이 있을 경우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캐피탈 콜(Capital Call)`로 운영할 계획이다.
◇ 현재 中企대출 만기 연장률 93%..정부 `더 높여라`
올해 만기도래하는 보증 대출과 무보증 대출을 전액 만기 연장하겠다는 합의안은 앞으로 은행들의 BIS 비율을 떨어뜨릴 수 있는 요인이다.
이는 지난 12일 올해 만기 도래하는 중소기업 대출보증을 1년간 전액 만기 연장하기로 한 정부정책에 화답해 은행권이 내놓은 선물 보따리라 할 수 있다.
금융감독당국에 따르면 작년말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총 424조 원으로 이 중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대출 규모는 총 160조원 정도다. 160조원 중소기업 대출 중 보증이 붙은 대출은 34조원 정도다.
금감원 관계자는 "개별 은행과 대출 건에 따라 만기 연장 방식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며 "올해 만기 도래하는 중소기업 대출을 향후 1년간 연장하겠다는 것이 합의안의 의미"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재 중소기업 만기 연장률이 평균 93%에 이르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조치로 인해 늘어날 은행권 부실 자산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통상 리스크가 큰 보증 대출의 경우 정부가 각종 지원책을 통해 보증률을 100% 가까이 끌어올린 점도 고려해야 한다.
감독당국은 시중은행들과 협의, 중소기업 대출 연장의 기준을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하겠다는 방침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대출받은 중소기업이 폐업하거나 부도를 내는 경우, 또 자체 상환하겠다는 경우 등 특별한 사유가 없을 경우 원칙적으로 1년간 대출을 만기 연장하기로 했다"며 "대출 연장에 따른 기준을 명확히하기 위해 금융감독원이 은행권과 협의해 특별한 사유에 대한 기준을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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