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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수 가르쳐 주세요, 사부님" (VOD)

조선일보 기자I 2007.06.14 11:40:00

호텔 요리사, 팔도별미 고수에게 무릎 꿇다

▲ 세종호텔 이광진 주방장(오른쪽)이 전북 부안에 있는 ‘계화회관’ 주인 이화자씨에게 백합죽 끓이는 법을 배우고 있다.

[조선일보 제공] 8일 오전 8시. 세종호텔 이광진(46) 주방장이 부엌칼 대신 자동차 운전대를 잡았다. 이 주방장은 마음이 급했다. 점심 때까지 전북 부안에 들렀다가 오후 3시 충남 태안반도를 ‘찍고’ 경기도 수원까지 오후 6시에 도착하는 빠듯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 주방장은 요즘 전국 팔도 맛집을 순례 중이다. 지난 5월 22일에는 강원도 원주와 경북 경주, 23일에는 전북 전주에 있는 유명한 맛집들을 돌고 왔다. “무슨 팔자가 그리 좋느냐”고 물으면, 이 주방장 속 터진다.

세종호텔 한식당 은하수(02-3705-9141)에서는 매년 7월과 8월 두 달 동안 팔도요리잔치(점심 3만7000원, 저녁 4만1000원)를 연다. 서울 구절판, 속초 오징어순대, 서산 알찜, 담양 죽순나물, 제주도 메밀빙떡, 원산 해물잡채 등 전국 방방곡곡 별미를 맘껏 맛보는 뷔페행사다. 이 주방장이 맛집 순례에 나선 건 올해 새로 추가할 지방 별미를 맛보기 위해서다. 이 주방장, 그리고 그와 함께 세종호텔 한식부에서 일하는 장석환(36) 주임이 뭘 배우는지 궁금해 따라가 보았다. 

▲ 계화회관 백합죽


부안 백합죽 '조개의 여왕' 백합의 쫄깃한 감칠맛

전북 부안에 있는 계화회관 식당 앞에서 차가 멈춘다. 미리 연락 받고 기다리던 식당 주인 이화자(63)씨가 두 요리사를 반갑게 맞는다. “호텔 요리사들이 뭘 배울 게 있다고 여기까지 오셨느냐”는 이씨 얼굴에 쑥스러움과 자부심이 동시에 드러난다.

부안은 백합조개로 알려진 지역. 백합은 ‘조개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만큼 육질이 쫄깃하면서 감칠맛이 진하다. 이 주방장은 백합을 넣고 끓인 백합죽을 이번 팔도요리잔치에서 선보일 계획. 이화자씨는 부안에서도 백합죽 끓이는 솜씨가 뛰어나다고 소문이 자자한 양반이다.

이화자씨가 주방에 들어가 큰 냄비를 불에 얹었다. 요리사 복장으로 갈아입은 이 주방장이 주방으로 이씨를 쫓아 들어간다. 이화자씨가 냄비에 물과 쌀을 넣고 주걱으로 젓기 시작한다. 이 주방장이 이씨의 행동 하나하나를 뚫어지게 관찰한다. 장석환 주임은 조리 과정과 재료를 꼼꼼히 공책에 기록한다.

“백합은 너무 크면 질기죠?”

“그러믄요. 잘 아시네요. 백합은 겉만 봐서는 절대 몰라요. 껍데기가 워낙 단단해서 안 벌어져요. 이렇게 백합 두 개를 맞부딪쳐 보세요. ‘따글따글’ 차돌마냥 맑은 소리가 나죠? 나쁜 놈은 ‘버걱버걱’하는 소리가 나요. 항상 이 기준으로 고르시면 좋아요. 물건(백합) 고르기가 첫째예요. 음식 솜씨는 다음이고.”

“당근이나 파를 다져 넣지 않으시나 봐요?”

“우리는 그런 걸 안써요. 그러면 백합 특유의 맛과 향을 버려요.”

“요즘 한식당 열이면 일곱, 여덟 곳은 당근 등을 다져넣거든요. 보기 좋으라고. 시류를 따르지 않고 원칙을 지키는 고집이 있어서 좋네요.”

그렇게 15분간 끓인 백합죽에 곱게 빻은 참깨와 김가루만 뿌려 낸다. 달고 고소하고 담백하고 개운하다. 대접에 담아주는 백합죽 7000원. 맑게 끓인 ‘백합탕(2만원·2~3인분)’부터 매콤하게 양념한 ‘백합찜(3만원·2~3인분)’, 살짝 데쳐 맵게 무친 ‘백합회(2만원·2~3인분)’까지, 재료가 좋으니 어떻게 요리해도 맛있다. 이화자씨가 개발했다는 ‘백합파전(7000원)’은 피자처럼 종이상자에 담아 테이크아웃도 가능하다. (063)581-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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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도맛집순례-부안 계화회관 백합죽 / 김성윤 기자

▲ 원이식관 박속낙지


태안 박속낙지 보드랍게 씹히는 낙지… 국물이 시원해요

백합조개 요리를 맛보자마자 서둘러 식당을 나왔다. 차를 급하게 달렸는데도 태안에 도착하니 오후 3시다. 태안에 있는 원이식관은 ‘박속낙지’로 전국에 단골을 둔 식당. 주인 안경순(49)씨가 요리하는 과정을 이 주방장이 자세히 지켜본다. 냄비에 맹물을 붓고 납작하게 썬 무를 넣는다. 국물이 끓자 청양고추를 송송 썰어넣는다. 그걸로 끝. 안경순씨가 이 ‘날탕’ 같은 냄비를 들고 테이블로 다가온다.

“조개를 넣지 않으시네요?”

“조개나 다른 재료가 들어가면 국물이 시원하기는 한데, 낙지 향이 나질 않아요.”

안경순씨가 수조에서 낙지 열댓 마리를 바가지에 담아온다. 낙지들이 꿈틀꿈틀 다리를 바가지 바깥으로 내민다. 안씨가 작은 낙지 한 마리를 쥐더니 얇게 썬 마늘 한 쪽을 몸통(흔히 머리로 알고 있다)에 꽂고 젓가락에 다리를 휘감아 먹으라고 건네준다. 마늘이 들어가 더 개운하고 깔끔하다. 그러더니 남은 낙지들을 냄비에 쓸어 넣는다. 말갛던 국물이 적갈색으로 변한다. “낙지는 삶으면 늘어져야 좋은 거예요. 껍질이 벗겨지면 나쁜 거고.”

낙지가 보드랍게 씹힌다. 담백해서 끝없이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맑은 국물이 구수하고 시원하다. 낙지는 때에 따라 가격이 다르지만, 6월 8일 현재 작으면 마리당 2200원, 크면 1.5마리당 1만3000원이다.

“세발낙지라고 있죠? 몸집 작고 다리도 가느다란 낙지 있잖아요? 세발낙지라는 종이 따로 있는 건가요?”

“겨울에 난 놈은 크고, 요즘 태어나는 놈은 작아요. 사람도 생일 빠르면 더 크잖아? 그런데 유전적으로 큰 사람도 있잖아요, 늦게 태어나도? 얘네(낙지)도 마찬가지데요.”

작으면 날로 먹기 좋지만, 역시 덩치 좋은 놈들이 맛의 깊이가 있다. 회로 먹어도 가격이 같다. ‘낙지탕(3만5000원, 4만5000원)’, ‘낙지볶음(1인분 1만원)’도 있다. (041)672-5052





▲ 팔도맛집순례-태안 원이식관 박속낙지 / 김성윤 기자

▲ 본가장수촌 누룽지오리백숙


수원 누룽지오리백숙 구수한 누룽지가 보름달처럼 떠 있네

경기도 수원 본가장수촌에 차를 세우자 오후 6시 30분. 수원 토속음식은 아니나, ‘누룽지백숙’으로 이름을 얻은 집이라 특별히 탐방 리스트에 올랐다. 주인 이남우(44)씨는 “백숙은 닭과 오리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닭보다 특별할 것 같아 오리를 주문했다.

폭 익은 오리고기가 부드럽다. 오리 특유의 냄새도 거의 없다. 이 주방장과 장 주임은 “한약재 달인 물에 한 번 끓여서 냄새를 없앴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두 사람이 들어간 한약재를 줄줄 읊는다. 오리백숙과 함께 나온 커다란 뚝배기 속에는 오리를 넣고 끓인 죽이 담겼는데, 특이하게도 죽 표면에 보름달처럼 커다랗고 둥그런 누룽지가 떠있다. 누룽지는 탄 듯 구수하면서도 쫄깃해서, 구운 돼지껍데기 같다.

“이건 따로 눌려서 띄운 건가요?” “아닙니다. 오리를 죽에 넣고 압력솥에 한꺼번에 찌는데, 이때 시간과 불 세기를 잘 조절하면 이렇게 둥그런 누룽지가 바닥에 만들어져요. 어떤 손님들은 누룽지를 더 달라고 하는데, 더 드리지 못해요. 한 번 만들 때마다 하나만 생기니까요.”

누룽지를 눌리면서 나오는 탄내가 섞인데다 녹두까지 넣어 일반 죽보다 구수하다. ‘누룽지오리백숙(3만5000원)’, ‘누룽지닭백숙(2만9000원)’. ‘다슬기해장국(5000원)’은 점심에 많이 나간다. ‘메밀막국수(1만원)’, ‘물냉면(5000원)’, ‘비빔냉면(5000원)’은 다른 음식만 못하다. (031)253-1232

이 주방장은 “많이 배우고 간다”고 이남우씨에게 인사하고 가게를 나섰다.





▲ 팔도맛집순례-수원 본가장수촌 누룽지오리백숙 / 김성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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