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조용만기자] 스페인의 사회당 정부가 오랜 전통인 `시에스타(siesta)`를 공식적으로 폐지했다고 27일(현지시간) 밝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스페인 정부는 새로운 규정을 통해 공무원들의 점심시간을 1시간으로 줄이고, 오후 6시에 업무를 마감하도록 했다.
스페인 문화권에서는 점심식사후 낮잠을 즐기는 `시에스타` 문화가 관습으로 굳어져 내려왔다. 시에스타로 인해 기업과 상점들은 보통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문을 닫고, 대신 오후 8~9시까지 근무를 한뒤 퇴근하는 행태를 보여왔다.
호르디 세빌라 행정장관은 "새로운 규정은 공공부문에서 업무시간의 혼돈을 차단하고, 스페인 국민들에게 일과 가정생활을 조화롭게 유지하도록 하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공무원들의 업무시간을 합리적으로 조정함으로써 모범사례가 정착되도록 애쓰고 있다"면서 "민간 기업들도 새로운 규정을 따라달라고 촉구했다.
세빌라 장관은 "이후 스페인 공무원들의 점심시간은 오후 2시부터 4시까지가 아니라, 유럽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낮 12시부터 1시까지로 조정된다"면서 "공무원들은 밤 8~9시가 아니라 6시에 퇴근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시에스타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인 만큼 퇴근시간을 앞당겨도 공무원들이 저해진 시간내에 같은 업무량을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페인의 시에스타는 그동안 폐지여부를 놓고 적잖은 논란을 빚어왔다. 폐지론자들은 오랜 낮잠과 업무공백으로 인해 효율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국가경제의 생산성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옹호론자들은 시에스타가 오랜 전통인데다 스페인 국민들의 정체성과 원기 회복, 대인관계 형성 등을 위해 유지돼야 한다는 주장을 펴왔지만 세계화 추세와 다국적 기업의 진출로 입지는 점점 좁아져왔다.
스페인의 재계 단체인 시쿨로 데 엠프레사리오스는 장시간의 시에스타가 하루를 망가뜨리는 비효율적인 방식이라며, 이로 인해 스페인 국내총생산(GDP)의 8%가 낭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코카콜라와 이베리카 등 일부 민간 기업들은 이미 시에스타 제도를 폐지, 점심시간을 45분으로 줄이는 대신 오후 6시에 업무를 종료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규정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관행을 바꾸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인 알레얀드라 무어는 "점심은 대인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주요한 수단"이라면서 "45분간의 점심시간만으로 의미있는 무엇인가를 이뤄내기는 힘들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