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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부동산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에 매도인이나 매수인이 매매계약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 문제가 된다. 의무 불이행 당사자의 상대방은 여전히 매매계약이 유효하기 때문에 매매계약에 따른 자신의 의무를 이행해야 하지만, 의무 불이행 당사자의 의무이행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때 상대방이 행사할 수 있는 권리가 매매계약 해제권이다. 매매계약의 효력을 없애 법적으로 불안한 지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매매계약 해제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매도인이나 매수인이 매매계약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매매계약이 자동으로 해제되는 것으로 생각하거나 단순히 매매계약을 해제하겠다는 의사표시만으로도 매매계약이 해제되는 것으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매수인이 잔금을 지급하기로 한 시점에 매도인이나 매수인의 의무 불이행이 발생하면 매매계약을 해제하기 위해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매수인이 잔금을 지급하려고 하는데 매도인이 부동산의 소유권과 점유권을 이전할 수 없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이 경우 매수인이 매매계약에 따른 잔금지급의무를 먼저 이행하는 것은 부동산의 소유권과 점유권을 이전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위험할 수 있다. 그런데 매수인의 잔금지급의무와 매도인의 부동산 소유권 및 점유권 이전의무는 동시에 이행돼야 하는 것으로서, 매수인이 잔금지급의무를 이행 또는 이행을 제공하지 않으면 매수인은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매수인은 영원히 매매계약의 효력에 구속돼야 하는 것일까? 이 경우 매수인은 잔금지급의무를 먼저 이행하는 것보다 이행제공만 하는 것이 안전하다. 이행제공이란 이행하였다고 볼만큼 그에 준하는 행위로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이행제공과 관련해 이행제공의 방법이 법에 명확히 규정돼 있는 것이 아니므로 어떤 행위까지 이행제공이 이루어진 것으로 볼 것인지 여부는 종종 논란이 된다.
최근 이와 관련해 의미있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매수인이 계좌에 잔금 상당의 예금을 보관하면서 매도인에게 매매대금을 수령하도록 알린 사안에서 원심은 이를 이행제공행위로 보지 않았지만 대법원은 달랐다. 매수인이 잔금지급시점에 매수인 계좌에 잔금 상당의 예금을 보관하고 이를 언제라도 출금할 수 있는 상태에서 매도인에게 매매대금을 수령하도록 알렸다면 적법한 이행제공으로 볼 수 있다는 취지다.
의무 이행을 하지 않는 상대방에게 먼저 의무를 이행하여 스스로 위험에 처하는 것보다는 이행에 준하는 행위로써 갈음하는 것이 안전하다. 잔금지급과 관련하여 대법원에서 이행제공의 기준을 제공한 만큼 매매계약 해제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이를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