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글러는 사실 지난 2007년 현행 모델이 데뷔한 모델로서 어느새 모델 수명이 다한 상태다. 이에 최근 지프는 시카고 오토쇼에서 아마도 랭글러의 마지막 스페셜 에디션이 될 ‘지프 랭글러 루비콘 리콘 에디션(2017 JEEP Wrangler Rubicon Recon)’을 선보이며 현행 랭글러와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2017년 3월, 랭글러를 다시 한 번 만나 그 가치를 되새겨 보기로 했다.
이번에 시승한 지프 랭글러 루비콘 4도어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루비콘 강을 건널 수 있는’ 존재다. 4,750mm의 전장과 1,880mm의 전폭, 1,840mm의 전고 그리고 대형 플래그십 세단에 웃도는 2,950mm의 긴 휠 베이스를 자랑한다. 차량의 공차 중량은 2,175kg에 이르는 말 그대로 ‘한 덩치’ 하는 존재다.
최근 체로키나 레니게이드를 통해 감각적인 디자인을 뽐내고 있지만 지프의 역사를 되돌아 본다면 브랜드가 지향하는 디자인은 다소 투박한 것이 사실이며 또 거칠게 느껴진다. 혹자는 성의 없는 디자인이라 치부할 수 있겠지만 모두가 비슷한 디자인을 뽐내는 다른 브랜드와의 확실한 차이를 만들며 브랜드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강하게 드러낸다.
브랜드를 상징하는 세븐 슬롯과 동그란 헤드라이트가 중심을 잡은 전면 디자인은 높게 높은 엔진룸과 좌우로 넉넉하게 튀어 나온 전면 범퍼 및 펜더를 통해 전체적인 균형을 완성한다. 순정 상태로도 여유로운 진입각을 확보한 전면 범퍼는 언제든 오프로드 주행이 가능한 존재임을 강조한다. 덧붙여 레이스카처럼 클립으로 체결되는 보닛은 이색적으로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참 싫어하는 디자인이지만 오프로더의 특성에 합리적인 구현임에는 반박할 논리가 없다. 참고로 지프 랭글러의 각종 파츠는 상황에 따라 손쉽게 탈거, 부착할 수 있어 파손에 빠른 대응 또한 가능하다.
지프 랭글러 루비콘 4도어의 투박한 외관 디자인은 실내 디자인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조수석 쪽 대시보드에 보조 손잡이를 배치한 것 외에는 특별함이 없는 단순한 대시보드와 수직의 단순한 구성이 적용된 센터페시아가 전부다. 물론 과거의 랭글러에 비한다면 한층 고급스럽고 여유로운 모습이지만 여전히 ‘필요한 것 외에는 담지 않는’ 모습이다.
투박한 디자인과 시대에 다소 뒤쳐진 듯한 계기판을 불만스럽게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차량의 전체적인 콘셉이나 감성과는 무척 좋은 매칭을 선사한다. 여기에 다양한 기능 버튼을 마련한 3-스포크 스티어링 휠이나 지프 레터링을 새긴 원형의 에에 밴트로 클래식한 감성을 강조해 랭글러에 담긴 역사를 느끼게 한다.
지프 랭글러 루비콘의 보닛 아래에는 FCA 그룹 그리고 크라이슬러 브랜드를 대표하는 펜타스타 엔진이 자리한다. 이전에는 200마력을 내는 2.8L 디젤 엔진도 함께 판매됐으나 현재는 펜타스타 엔진만이 유일하다. V6 3.6L 크기를 가진 펜타스타 엔진은 지프 랭글러 루비콘에게 최고 284마력(@6,450RPM)을 내며 4,300RPM에서 35.4kg.m의 토크를 낸다.
여기에 오토스틱이라 불리는 5단 자동 변속기와 파트 타임 사륜 구동시스템인 로드-트랙(Rock-Tracⓡ)을 통해 네 바퀴로 전달한다. 사륜 구동 시스템은 물론 노면 상태에 따라 2H, 4H, N 그리고 4L 등의 주행 모드를 지원한다. 한편 지프 랭글러 루비콘 4도어의 공인 연비는 복합 기준 7.4km/L(도심 6.7km/L 고속 8.5km/L)로 덩치 값을 한다.
독특한 컬러가 돋보이는 랭글러 루비콘 4도어의 열고 시트에 몸을 맡겼다. 보통의 차량들이 기자의 허리 높이보다 낮은 곳에 시트가 있는 것에 반해 랭글러 루비콘 4도어의 시트는 상당히 높아 괜스레 미소를 지으며 시트에 올랐다. 시트 포지션과 스티어링 휠 위치, 룸 미러와 사이드 미러를 조절한 후 아날로그의 감성을 살려 키를 돌려 시동을 걸었다.
시동이 걸리며 진동과 엔진 고유의 소리가 실내로 전해진다. 흔히 랭글러라고 한다면 거칠고 터프해 정숙성과 거리가 멀게 느껴지겠지만 그렇게 거슬리는 수준은 아니다. 물론 애초에 펜타스타 엔진 자체가 완성도가 높은 것도 큰 몫을 하는 것 같다. 게다가 이전에 디젤 모델을 시승했을 때 디젤 본연의 감성이 느껴졌던 것이 떠올라 가솔린 모델에 대해 호감이 느껴졌다.
점진적으로 활기를 찾아가는 감각은 근래의 터보 엔진의 출력과는 확실히 다른 매력이다. 덕분에 RPM을 높이면서 달리기 시작하면 육중한 차체가 무색할 정도로 강력한 가속력을 선보인다. 특히 간선도로, 고속화도로에서 추월 할 때에도 필요 이상의 넉넉함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차량의 형태 덕에 풍절음이 큰 것은 감수해야 할 대가다.
물론 사륜 구동 시스템으로 인해 변속기의 채택이 제한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과연 이것이 베스트일까?’라는 생각은 역시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물론 다행이라고 한다면 곧 데뷔할 차세대 랭글러는 보다 다단화된 변속기의 도입이 예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접지력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구간이나 순간적으로 높낮이가 변동되는 노면에서 다른 차량이었다면 한 번 더 고민하고 긴장하며 조심스럽게 진입하겠지만 지프 랭글러 루비콘 4도어에서는 아무런 걱정 없이 사륜 구동 시스템을 4L로 바꾸고 스티어링 휠을 움켜 쥐고, 엑셀레이터 페달을 밟았다. 그리고 이후의 모든 것은 모두 랭글러 스스로 해결했다.
포장된 도로에서는 사실 그렇게 쾌적한 승차감을 선사하는 차량은 아니다. 하지만 강력하고 매력적인 펜타스타 엔진을 시작으로 견고한 차체, 험로를 위해 퀄리티를 끌어 올린 서스펜션 덕분에 자신감 있는 주행이 가능했다. 지면과의 높이가 높아서 고속에서 살짝 불안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차량의 움직임 자체는 흔들림 없이 과감하고 저돌적이었다.
좋은 점: 압도적인 존재감, 뛰어난 오프로드 주행 성능 그리고 펜타스타 엔진
안좋은 점: 불편한 승차감, 5단 변속기
지프는 지프고 랭글러는 랭글러다. 제 아무리 모델 수명이 다해가는 존재여도 지프 랭글러는 여전히 랭글러의 가치가 돋보였다. 견고한 이미지처럼 오프로드에서 결코 주저함이 없는 그 모습은 도심형 SUV로 시선을 옮기고 있는 다른 브랜드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할 것 같다.
게다가 이번의 시승에서는 펜타스타 엔진의 재발견도 인상적이었다. 랭글러처럼 이미 오랜 시간 동안 브랜드를 책임졌던 펜타스타 엔진 역시 아직 늙지 않았다는 듯 자신의 매력을 뽐냈다. 이제 시간이 다됐다, 랭글러는 최강의 존재로 다음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