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의철논설위원] 본론으로 되돌아와 이번 공판때 가까이서 본 이건희 전회장은 당시와 비교해 그닥 달라지지 않았다. 걸음은 예나 지금이나 느릿느릿, 어깨는 좀 더 굽었다. 건강은 썩 좋아 보이진 않았다.
재판과정에서 본 이건희 전 회장은 평범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언듯 눈물을 보이기도 했고, 자식에 대한 애정, 40여년 이상 몸담았던 삼성에 대한 애틋함도 솔직히 드러냈다. 물론 거인의 풍모도 느낄 수 있었다. 아들과 한 법정에서 있는 것이 안타까웠던 변호사가 이건희 피고인이 퇴정할 수 있도록 요구해, 재판장이 이를 허가했지만 “그대로 있겠다”고 답했다.
재판정에 나온 이건희 전회장의 발언중에선 몇가지 주목할 만한 내용이 있다. 우선 민병훈 판사의 질문에 대한 답변. “삼성그룹내 많은 계열사들이 있는 데 어떤 계열사를 가장 특별하게 생각하느냐”(민병훈 판사)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입니다”(이건희)
이어 이건희 전회장은 “개인적으로 나는 경영자일뿐 단 한번도 지배주주라고 생각해본 적 없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그룹의 새로운 사업과 기술개발에 고민하고 열중해왔다”고 말했다. 경영권과 관련해 “열심히 경영해 회사를 잘 키우는 것이 경영권 위협에 대한 최선의 방어”라고도 했다.
재판과정에서 기자는 김인주 사장의 증언에서 또 한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인주 사장은 “삼성SDS의 BW(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할 때 회장께서 재용 남매한테 전부 주지 말고 이학수 실장이 5% , 김인주 사장도 그 절반 정도 인수하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이같은 진술은 전문경영인에 대한 이건희 회장의 시각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과거 한보 재판 때 정태수 전회장은 “머슴이 뭘 압니까”라고 말해 세간에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전문경영인이라고 해봤자 머슴에 불과하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이 회장은 머슴으로 치부되던 전문경영인을 회장 일가와 비슷한 오너라고 생각한 듯 하다. “실제 주식을 100% 갖고 있더라도 그 회사가 능력이 없고 본인이 경영능력을 갖지 못하면 1% 지분을 가진 것만도 못하다”는 그의 말에서도 이는 확인된다.
기자는 삼성의 경쟁력에 대해서 오랫동안 관심을 갖고 지켜봤다. 도대체 무엇이 삼성을 오늘의 삼성으로 있게 한 것일까? 외환위기 전후만을 놓고 비교해봐도 재계에서 삼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게 달라졌다. 외환위기 이전에 삼성은 국내 ‘재벌중 하나’(one of them) 이었지만 외환위기 이후 삼성은 독보적인 ‘1위 기업’(only one)으로 자리매김했다. 여러 가지 분석이 있을 수 있다. 이 회장의 리더십, 탁월한 인재육성책, 뼈를 깎는 구조조정 등등...
모두 맞는 해석일 것이나 기자는 중요한 한가지 요인이 바로 삼성의 지배구조 변경이라고 생각한다. 이건희 일가가 지배하는 삼성의 지배구조가 바뀐 게 없는 데 무슨 얘기냐고? 그렇지 않다. 이 회장은 전문경영인을 오너의 반열에 올려놓은 국내 최초의 그룹 회장이다. 이같은 지배구조 변경은 단순히 지분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전략기획실(옛 비서실)의 최고 수뇌부를 오너의 반열에 올림으로써 이 회장은 주주와 전문경영인간 ‘대리인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닐까? (이는 경영학의 오랜 과제이기도 하다. 기자가 이를 증명할 수만 있다면 노벨 경영학상(?)도 가능할 듯 싶다) “재용이가 후계자가 되려면 본인의 능력이 닿아야 한다. 그 능력이 후계자로 적당치 않으면 절대로 이어받지 못한다”와 같은 발언은 이를 확인해준다.
삼성은 그 자체로 한국 현대사의 신화다. 한국 기업사에서 삼성을 빼 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기업을 넘어 한국 사회에서 변화와 개혁의 선두에 항상 삼성이 있었다.
오해하지 말기를.... 기자는 삼성에 면죄부를 주자는 것이 아니다. 삼성을 둘러싼 신화와 신비, 그리고 무지에서 오는 편견을 벗겨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이 팩트이고, 무엇이 팩트가 아닌가를 찾아보고 싶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삼성에 대해 사실과 사실이 아닌 것을 구별하는 것은 기자의 가장 큰 역할이기도 할 것 같다. 이같은 팩트 찾기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쭈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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