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4월 06일자 33면에 게재됐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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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지난 3일 오후 친구와 연극을 보기 위해 지하철 4호선 혜화역 2번 출구로 나온 직장인 김지연(31) 씨는 불쾌한 경험을 했다. 나오자마자 좋은 공연이 있다며 다짜고짜 접근하는 호객꾼, 소위 `삐끼`와 마주쳐야 했기 때문이다. 마로니에 공원 앞 한국소극장협회가 운영하는 대학로 티켓박스까지 가는 동안 김씨는 몇 번을 삐끼에게 시달리다 결국 기분이 상했다.
◇ 설문조사 67% “호객행위 불편해”
140여개의 크고 작은 공연장이 몰려 한국 공연계의 메카로 자리잡은 서울 동숭동 대학로가 전문 호객꾼인 삐끼들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이들은 연극을 보러 온 관객들에게 티켓을 강매하거나 불쾌감을 안겨주며 대학로의 골칫거리가 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서울연극센터가 2011년 11월부터 12월 사이 대학로 공연작 20개 작품을 본 현장 관람객 1000명을 대상으로 출구 설문조사를 한 결과 67%가 대학로의 호객행위와 상업적 변질이 가장 불편하다고 응답했다. 삐끼들의 호객행위가 대학로 공연 발전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증거다.
◇ 좋은 공연보다 수수료 많은 공연만 소개
사실 대학로 삐끼 문제는 갑자기 불거진 문제는 아니다. 관할구청인 종로구청 관계자는 “대학로 일대의 호객행위는 10여 년 전부터 계속 이어졌다”며 “경찰서와 구청에서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종종 단속을 펼치지만 상주 인력을 배치하지 않는 한 근절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게다가 호객행위는 경범죄에 속하기 때문에 처벌강도가 세지 않아 단속이 이뤄져도 어느 순간만 지나면 다시 반복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다 최근에는 호객행위만 전문적으로 해주는 업체도 생겨났다. 공연 제작자나 연출가를 찾아와 관객 당 얼마의 수수료를 받고 호객행위를 해주겠다고 접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업화된 삐끼들은 관객들에게 `좋은 공연`보다는 자신들에게 수수료가 많이 떨어지는 공연을 소개한다. 이를 위해 심지어 예매순위를 조작하고 자신들이 팔지 않는 공연에 대해 “배우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등 잘못된 정보까지 흘리는 경우도 태반이다.
◇ “홍보방법 많지 않아 불가피”
익명을 요구한 대학로의 한 공연제작자는 “호객행위를 하는 연극 대부분이 돈벌이를 위해 급조된 것들이 많다”며 “이런 작품을 본 관객들이 연극에 대해 실망하게 되고 결국 어려운 환경에서 치열하게 만들어진 작품들이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는 구조가 형성되는 게 가장 큰 문제다”고 지적했다.
반면 호객행위를 하는 공연의 관계자는 “홍보를 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아 불가피한 면이 있다”며 “관객들에게 보다 저렴한 티켓값으로 공연을 볼 수 있게 하는 면도 있다”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대학로 호객행위 근절에 대한 명쾌한 해결책은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대학로에 위치한 서울연극센터의 박은희 총괄매니저는 “공연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는 경우 호객행위에 넘어가기 쉽다”며 “관객들이 서울연극센터나 각 티켓 예매처를 통해 어떤 작품을 볼 것인지 미리 확인한다면 호객행위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극협회·배우협회·소공연장연합회의로 구성된 대학로 문화환경 감시단은 “좋은 공연 안내소 운영과 호객행위 근절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펼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