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하상주 칼럼니스트] 돈은 우리가 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을 해 준다. 돈은 옷이 아니면서도 우리에게 옷을 주고, 음식이 아니면서도 음식을 준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 자기에게 돈이 있으면 자신이 겪고 있는 많은 어려운 문제들이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다. 아무리 머리가 좋고, 몸이 튼튼한 사람이라도 돈이 없으면 목에 “일자리 구함”이라는 팻말을 걸고 길가에 서 있어야 한다.
돈이 이토록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실제로 돈에 대해서 아는 것은 별로 없다. 이는 마치 공기가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공기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과 같다. 사실 공기의 정체에 대해서 안다고 해서 없는 공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공기와 돈이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다. 공기는 지구의 자연 상태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돈은 자연 상태에서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아주 소수의 몇 사람들이 돈의 양을 늘리거나 줄이거나 또는 질을 높이거나 낮추거나 조정을 한다. 이 소수의 사람들은 과연 돈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지금 돈의 양이 넘쳐나는지 모자라는지 또는 돈의 질이 높은지 낮은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들 소수의 사람들은 자기들이 마치 한 공동체의 운명이 최종적으로 자신들이 손에 달려있다는 환상적 의무감아래 돈에 관한 의사 결정을 내리고 있다.
지금 외계인이 한국의 어느 땅에 내렸다고 하자. 시장에 갔는데 사람들이 주머니에서 무엇인가 사람 얼굴이 그려진 종이쪽지를 꺼내 주고 물건을 받는 것을 보았다고 하자. 그들은 이 현상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외계인까지 갈 필요도 없다.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 가서 물건을 사고 한국의 종이돈을 건네주면 미쳤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돈의 정체란 과연 무엇인가? 한마디로 줄이면 믿음이다. 굳이 종이위에 과거 위대한 선조들의 얼굴이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어떤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라도 좋다. 당신의 얼굴이라도 좋다. 용서한다면 나의 얼굴이 들어가도 좋다. 사실은 그 누구의 얼굴도 들어가지 않은 플라스틱 카드를 주어도 맛있는 점심을 먹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외계인이나 아프리카 사람들이 한국의 원화를 돈이라고 보지 않는 것은 그들이 원화에 대한 믿음의 공동체 밖에 있기 때문이다.
돈의 정체가 믿음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돈은 신과 비슷한 자리에 있다. 신의 존재는 믿음이외에 달리 설명할 것이 없다. 이성으로 신의 존재를 설명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신으로부터 배반당한다. 어쩌면 돈은 신과 비슷한 힘을 가지고 신이 체면 때문에 하지 못하는 세속의 일을 대신 해주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잘못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세속의 신인 돈을 더 좋아하는 지도 모른다.
신에 대한 믿음이 약해지면 종교체계가 흔들리듯이 돈에 대한 믿음이 약해지면 금융시스템 나아가서 한 나라의 경제기반이 흔들리게 된다. 1720년대 프랑스 존 로의 종이 돈 실험, 미국 독립전쟁 당시의 콘티넨탈, 1920년대 바이마르 공화국의 하이퍼인플레이션, 지금 짐바브웨의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은 모두 돈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면서 일어난 일들이다.
돈에 대한 믿음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오늘 1만원의 가치를 가지는 종이돈이 내일, 내년, 나아가서 오랜 뒤에도 여전히 1만원의 가치를 가질 것이라는 믿음이다. 오늘 10억 원하는 집값이 내년에 15억 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 그 순간 돈에 대한 믿음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런 현상이 어떤 특정한 한 두 개의 물건이 아니라 경제에 전반적으로 일어날 것이라는 예상이 들면 그때는 더 심각해진다.
돈이 믿음을 잃어 가면 즉 가치를 잃어 가면 술집에서 팁으로도 그 돈을 받으려고 하지 않고, 비행기 납치범도 가치를 잃어가는 돈은 받지 않으려고 하고, 관광지의 거지도 그런 돈은 받지 않으려고 한다. 지금 미국의 달러가 이런 불명예의 대접을 받고 있다.
종이돈의 생산비용은 거의 공짜나 마찬가지다. 플라스틱 돈은 생산 비용이 더 쌀 것이다. 전화로 거래되는 돈이나 인터넷으로 거래되는 돈은 더더욱 쌀 것이다. 이렇게 싸게 만든 돈이라도 공동체에서 믿음을 받고 있는 한 이 돈들은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정치가들은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돈을 풀어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과거 금 본위 시절, 즉 갖고 있는 금의 가치만큼만 돈을 찍어낼 수 있었던 시절에는 전쟁 등으로 돈이 갑자기 더 많이 필요해지면 잠시 금본위제를 중단하고는 종이돈을 마음껏 찍어냈다. 이런 금본위제도가 공식적으로 중단된 것은 1971년 미국이 달러와 금의 교환을 중단한 이후다. 마침내 금의 구속에서 완전히 벗어난 종이돈은 이제 완전히 소수 몇 사람의 독점물이 되어 버렸다. 평소에는 적당한 양의 돈을 찍어내다가도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돈의 양을 늘려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기가 어렵다. 이런 유혹에 한두 번 빠지면 결국 위에서 본 역사적인 사건 즉 돈에 대한 믿음이 뿌리째 흔들리는 불행한 사태를 만나게 된다.
종이돈은 금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었지만 이 자유는 그것을 지킬 수 있는 자만의 것이다. 이것은 돈이 주는 역사의 교훈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언젠가 말했듯이 우리가 역사에서 배우는 유일한 교훈은 “사람들은 역사에서 아무런 것도 배우지 못한다.” 는 것인지도 모른다. 과연 달러는 이 역사의 역설적인 교훈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을까?
[하상주 가치투자교실 대표]
*이 글을 쓴 하 대표는 <영업보고서로 보는 좋은 회사 나쁜 회사(2007년 개정판)>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의 홈페이지 http://www.haclass.com으로 가면 다른 글들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