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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 한 대서 글로벌 '메가캐리어'로…'수송보국' 한진그룹 8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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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묵 기자I 2025.11.03 06:00:00

故 조중훈 창업주·조양호 선대회장 리더십 재조명
전후 척박한 환경서 육송사업 개척…''하늘''로 확장
대한항공, 90년대 명실상부 글로벌 톱 항공사로
父子 민간 외교관…88·평창올림픽 유치도 앞장 서

[이데일리 정병묵 기자] “신념을 갖고 추진한 창업자의 철학이 면면히 살아 숨쉬는 기업이야말로, 훌륭한 예술작품처럼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 만인을 위해 기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 저서 ‘내가 걸어온 길’ 중

한진그룹이 11월 1일로 창립 80주년을 맞았다. 수송 불모지였던 우리나라 하늘과 땅에 수송의 길을 새로 만들고 닦아 넓혀 놓은 한진그룹 조중훈 창업주와 조양호 선대회장의 리더십이 재조명되고 있다. 두 부자는 일평생 ‘수송보국(輸送報國)’을 신념으로 삼아 국가의 동맥 역할을 하는 수송 산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선대 경영진의 뜻을 이어온 한진그룹은 글로벌 종합 운송 기업으로 도약했다.

1995년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왼쪽)와 함께 보잉 777 항공기를 시찰하는 조양호 선대회장 (사진=한진그룹)
조중훈 창업주… 신용과 결단으로 길 위에 새긴 역사

해방 직후 혼란하던 1945년 당시 스물다섯 살이던 조중훈 창업주는 트럭 한 대를 장만하고 인천시 해안동에 ‘한진상사’ 간판을 내걸었다. 교통과 수송은 인체의 혈관처럼 한 국가의 정치·경제·문화·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기간 산업으로 우리나라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믿었다.

6·25 전쟁 직후 쑥대밭이 된 땅과 은행 부채만 남았지만 창업주는 그간 쌓아온 신용으로 2년 만에 전쟁 직전의 사세를 회복했다. 한진상사는 미 군수품 책임제 수송, 주월미군 군수품 수송 등을 도맡으며 회사를 키워나갔다. 1956년도에는 1인당 국민 소득이 100달러도 안 되던 시절 7만달러에 달하는 계약을 미군과 직접 맺으며 수송 전문 회사로서 입지를 다졌다.

조중훈 창업주(가운데)가 한진상사 창업 초창기 미군 관계자들과 찍은 사진(사진=한진그룹)
육송 분야에서 안정적인 궤도에 오르자 조중훈 창업주는 ‘하늘에서의 수송’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27억 부채의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해 정상화에 나섰다. 당시에는 새로운 개념이었던 성과별 인센티브 제도도 도입했다. 항공 관련 서적도 탐독했다. 제트엔진에 관한 실무 서적부터 유체 역학, 재료학 원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책을 접하며 실무진과 깊은 얘기를 나눌 수 있게 됐다.

대한항공은 1970년대 들어 미 태평양 노선과 유럽 항로를 개척하며 국제항공사로서의 기틀을 다져나갔다. 1973년 미주로 향하는 태평양 노선에 보잉 747 점보기를 투입했다. 전 세계 최초로 점보기를 화물 노선에 투입함으로써 화물 수송 분야에 새 전기를 열었다. 대한항공은 1975년 매출액 1000억원을 돌파하고 흑자를 기록했다.

1973년 5월 16일 보잉 747 점보기의 태평양 노선 취항식에서 조중훈 창업주(오른쪽에서 세번째)가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왼쪽에서 세번째) 등 정ㆍ재계 인사들과 함께 테이프커팅을 하고 있다.(사진=한진그룹)
현재 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의 기반이 된 항공기 제작 업무도 조중훈 창업주가 씨앗을 심었다. 1976년 말 경남 김해 일대에 항공 산업 시설을 갖춘 공장(현 테크센터)을 준공하고 1982년 우리나라 최초 국산 전투기 ‘제공호’를 출고했다.

조중훈 창업주는 ‘민간 외교관’으로도 활약했다. 1970년대 유럽 신생 항공기 제작사 에어버스의 항공기를 구매해 한국과 프랑스 외교에 도움을 준 일화는 유명하다. 1981년 독일 바덴바덴에서 개최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는 서울올림픽 유치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시스템 경영 선구자’ 조양호 선대회장

조양호 선대회장은 아버지가 일군 한진그룹을 본격적으로 성장시켰다. 미국 유학 중 귀국해 군에 입대, 육군 제7사단에서 비무장지대 및 베트남 파병 근무 등으로 36개월을 복무하고 병장으로 만기 제대했다. 제대 직후인 1974년 대한항공 정비 담당 직원으로 입사해 현장에서 기초부터 철저한 경영 수업을 받았다.

조양호 한진그룹 선대회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2000년 항공 동맹체 ‘스카이팀(SkyTeam)’ 결성 원년 멤버인 3개 항공사 CEO들과 손을 맞잡고 있다.(사진=한진그룹)
조양호 선대회장은 ‘시스템 경영’이라는 색깔을 더했다. 시스템을 잘 만들어 놓으면 누가 그 자리에 가도 업무가 돌아간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그는 또 “적당주의에서 사고가 발생한다”며 안전을 타협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선대회장은 폭넓은 인맥과 해박한 실무지식으로 국제 항공업계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역할을 맡았다. 1990년대 항공 시장이 자유화되면서 조 선대회장은 각별한 신뢰를 지닌 델타항공, 에어프랑스, 아에로멕시코 CEO들과 함께 ‘스카이팀’을 출범했다. 2024년 말 기준 스카이팀은 18개 항공사가 모인 동맹체로 발전했으며, 전 세계 160개국 1000여개 도시에 취항하고 있다.

아버지가 했던 민간 외교관 활동도 이어갔다. 조 선대회장은 항공업계의 유엔(UN)이라 불리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서 1996년부터 집행위원회 위원을, 2014년부터는 전략정책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프랑스 루브르, 러시아 에르미타주, 영국 대영박물관 등 세계 3대 박물관에 한국어 안내 서비스도 성사시켰다.

2008년 조양호 한진그룹 선대회장(오른쪽)이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해설 서비스를 살펴보는 모습
스포츠를 사랑한 기업인으로도 유명하다. 국내 스포츠 종목의 다양화를 위해 배구단, 탁구단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2011년에는 스피드스케이팅팀도 창단했다. 88서울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열리는 국내 최초의 동계올림픽인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도 힘썼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한진그룹의 ‘한진’은 ‘한민족(韓民族)의 전진(前進)’을 의미한다”며 “대한민국 경제, 사회, 정치, 문화 등 모든 분야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국민기업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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