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순의 생활 속의 펀드)내려갈 것을 알고 山에 오른다

이재순 기자I 2005.08.10 09:59:13

적립식펀드 수익률, 하락한 후 상승에 따른 효과 더 커
"내릴 때 또 오를 것을 믿어야"

[이데일리 이재순 컬럼니스트] 1999년 5월 3일 에베레스트 정상 밑 능선에서 한 구의 시체가 발견됐다. 75년간, 에베레스트에 몸을 묻은 수많은 다른 영혼들과 함께 그 기나 긴 세월을 차갑고 냉혹한 얼음 속에 뒤덮여 있었던 이는 다름 아닌 `조지 말로니`였다.

‘왜, 위험하고 죽을지도 모르는 산에 오르느냐?’는 어느 부인의 물음에, ‘Because it is there, 산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던 조지 말로니는 운명처럼 ‘그곳’에서 잠들었다.

엄홍길 대장의 휴먼원정대 또한 우리의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그 뜨거움에는 8,848m의 무게로 짓누르는 에베레스트의 높이보다 더 높고 강한 동지애가 있음이다. 그러기에 슬픔 속에서도 풋풋한 감동과 희망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산에 오르는 모든 이는 알고 있다. 오르면 내려가야 함을, 그리고 또 다시 중독에 걸린 것 마냥 다시 올라야 함을 알고 있다. 항상 오르면 내려가고, 내려가면 다시 오르는...

고지 1000의 의미, 고지 2000의 의미는 그들에겐 그리 중요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나이는 그저 숫자일 따름이라고 치부하는 것과 같이, 그들에겐 항상 도전하는 그 정신이 중요할 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철학적인 접근이 펀드투자에도 적용될 수는 없는 것일까?

종합주가지수가 1000포인트를 넘어서면서 가장 많은 질문이 ‘주가가 떨어지면 어떡하죠?’, ‘지금, 적립식 펀드에 가입해도 되는 건가요’ 이다.

적립식 펀드라는 용어에 대한 문제 제기는 차치하고라도, ‘지수 1000포인트는 그저 숫자일 따름 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답변일까?

사실, 지금 뿐만이 아니라 어느 지수대였던간에 투자하기에 녹록했던 때는 없었던 것 같다.

주가가 500대였을 때에도 비관적인 전망이 시장을 지배하며 투자하기를 꺼려했고, 이런 현상은 800대에서도 900대에서도 그랬다. 주가가 1000을 넘어서도 너무 오른 것이 아닌가라는 걱정을 하는 것은 반드시 주가가 1000시대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근원적인 질문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도대체 적립으로 투자하는 이유가 무언가 이다. 펀드에 적립으로 넣는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주가가 떨어질 것을 알고 투자한다는 것이다. 만약 주가가 하락하지 않을 것을 100%확신한다면 빚을 내서라도 투자할 것이다. 산을 타는 이들이 내려갈 것을 알고 오르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니겠는가.

오히려 주가가 떨어지는 시점을 더 싼 가격에 매수할 수 있는 기회로 삼는 것이 적립식 투자가 갖고 있는 내재된 투자방법이다. 낮은 가격대에 매입함으로써 가격이 오를 때 더 큰 효과를 보자는 것이다. 속칭, 물 타기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아래 그림은 2000년 이후 종합주가지수 추이이다.


하락과 상승을 반복하면서 2005.7.26일 기준으로 2.98%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그렇다면 만약 2000.1.4부터 주식시장에 매일 10만원씩 불입했다면 2005.7.26일까지 얼마의 수익률을 거뒀을까. 정확히 52.77%였다.



그림은 2000.1.4부터 2005.7.26까지 지수에 정액씩 매일 불입했을 때 2005.7.26까지의 적립식 누적 수익률 추이를 나타내고 있다.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했던 시점(1번)에 투자된 자금의 경우 수익률 효과가 크게 나타나고 있다.

참고로 아래 그림은 주가가 상승하다가 하락한 01.9.17부터 02.9.17까지 1년간 수익률 추이를 나타낸 것이다.



01.9.17 종합주가지수는 468.76포인트였으며, 정확히 1년 후인 02.9.17에는 726.80으로 55.04%나 상승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매일 적립식으로 지수에 투자한 후의 적립식투자수익률은 2.61%에 불과했다.



결과적으로만 보면, 적립식 투자수익률은 구체적인 주가흐름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시장이 하락한 후 상승에 따른 수익률 효과가, 상승 후 하락하는 수익률 효과보다 더 양호하게 나타났다.

그래서 누군가 적립식으로 펀드에 투자하고 싶은 데, 주가가 떨어지면 어떡하죠? 라고 물을 때면 오히려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우리는 오를 때에 내릴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내릴 때에 다시 오를 것을 믿습니다.’라고.

마지막으로 사족 하나 달고 끝내고자 한다.

가끔이지만, 주가 1000을 넘어서면서 허탈한 감정이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아닐는지 생각해 보곤 한다. 연극이 끝난 후, 조명이 꺼진 무대 위를 바라보는 것처럼 말이다. 마치 1000포인트의 주가를 목표로 목매며 달음질쳐왔던 것인 마냥.

십수 년 전 양구 신병교육대에서 6주간 훈련을 받던 때가 기억난다. 6주간의 달력을 그려놓고 하루씩 사선을 그으며 신병훈련기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6주간의 훈련이 끝나면 마치 군대생활도 끝날 것 같은 희망에 사로 잡혀 있었다. 그러나 정작 6주간의 신병교육이 끝났을 때는 오히려 허탈감과 무력감을 느꼈었다. 광활한 바다에 갑자기 내동댕이쳐지는 듯한 두려움은, 앞으로 남은 군대생활에 비하면 신병훈련은 고작 첫 단추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물론 시간은 사사로운 감정에 사로잡힐 수 있는 여유조차 주지 않은 채 새로운 목표를 부과했지만 말이다.

이제 우리도 주가지수라는 숫자에 대해 좀 더 초연해졌으면 한다. 고지 1000, 고지 2000이 문제가 아니고 산을 오르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가 강조하는 산악인들처럼 말이다.

(이재순 제로인 조사분석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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