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월가(Wall Street)를 감독하는 증권거래위원회(SEC)를 지난해 취재하면서 들었던 말이다. SEC의 고위급 위원(commissioner)이자 ‘크립토 맘(Crypto Mom)’으로 불리는 헤스터 퍼스(Hester Peirce) 위원은 당시 워싱턴D.C에서 이데일리에서 만나 ‘한국의 새정부인 이재명정부가 자본시장 정책을 추진할 때 고려해야 할 점’에 대해 질문받자 이같이 답했다.
퍼스 위원이 ‘체크 앤 밸런스’를 강조한 것은 정책 실패를 막기 위해서다. 당국이 빠르게 변화하는 월가의 모든 상황을 알 수 없는 만큼 시장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다양한 시각에서 정책을 ‘체크’하며 ‘밸런스’를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정책으로 인한 부정적인 결과를 견제하려면 결정을 뒷받침하는 사실을 ‘최대한 공개’하고 법령·규정을 어떻게 해석·적용했는지 법적 논리를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특히 그는 당국이 특정 정책의 취지나 성과를 부각하고 싶은 유혹이 생길수록 ‘체크 앤 밸런스’가 더욱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당시 SEC는 시장 제보자에게 파격적인 보상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추진하고 있었다. SEC 입장에서는 해당 제도의 실적을 보여주고 싶었고, 언론을 통해 ‘파격적인 보상금 지급 효과’가 대서특필 되길 원했다.
퍼스는 바로 이같은 순간에 정책의 부작용이 가려질 수 있다고 봤다. 정부가 정책 성과를 강조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수록 정보의 투명한 공개와 다양한 여론수렴을 통해 ‘체크 앤 밸런스’를 작동시켜야 하다는 게 퍼스 제언의 핵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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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시장에서는 내년 2월 토큰증권발행(STO) 법안이 시행되더라도 정작 팔 수 있는 상품이 부족해 ‘개점휴업’ 상태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그런데 당국은 주식·채권·펀드 같은 정형증권 토큰화에 이어 상장 주식과 스테이블코인 결제까지 단계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이같은 3단계 로드맵을 제시하면서 시장의 우려를 일정 부분 해소했다. 토큰증권 발행·유통이라는 이재명정부 국정과제를 제대로 구현하기 위한 금융위의 고민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시장도 일단 박수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정책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하나둘 나오고 있다. 금융위 보도자료에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100페이지가 넘는 관련 자료를 뜯어보니 정책 추진 방식에서 짚어봐야 할 대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보도자료만 봐서는 전혀 몰랐던 내용”이라며 비상등이 켜진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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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증권사마다 서로 다른 블록체인을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한국투자증권은 A 원장, 미래에셋은 B 원장, NH투자증권은 C 원장을 쓴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같은 주식 토큰이라도 서로 다른 원장에 존재하게 된다.
그런데 ‘상호운용 금지’ 규정에 따라 증권사 간 거래가 단절돼 서로 이동할 수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각각의 분산원장이 사실성 서로 단절된 ‘갈라파고스 섬’처럼 될 수 있다. 서울에 있는 물건과 부산에 있는 물건이 있는데 그 사이를 연결하는 도로가 없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다 보니 “금융위가 토큰증권 문은 열었는데 통로는 막았다(김태림 한국웹3블록체인협회 사무총장)”,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서병윤 DSRV 대표)”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금융당국으로서는 안정성을 우선하겠다는 입장일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폐쇄형 인프라 방식이 이재명정부의 국정과제를 제대로 이행하는 것인지도 함께 고민해 봐야 한다. ‘디지털자산 생태계 구축’ 국정과제는 “분산 원장 기반의 효율적 계좌 관리, 스마트 컨트랙트 활용이 가능한 토큰증권의 발행·유통 제도 도입”이라고 명시돼 있다.
이같은 국정과제에 따라 토큰증권을 도입하는 이유는 단순히 증권의 기록 방식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다. 분산원장과 스마트컨트랙트를 활용해 발행·유통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서로 다른 원장을 연결할 수 없는 폐쇄적 구조로 되면 장기적으로 국정과제의 취지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스테이블코인 결제까지 도입해 해외 시장으로 뻗어나겠다는 구상과 우리만의 폐쇄형 인프라를 고집하는 방식이 양립할 수 있는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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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부분은 24시간 거래 관련 SEC 정책이 최종 확정되기 전에 이같은 논의를 온오프라인에서 전면 공개 형태로 진행하는 것이다. SEC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폴 앳킨스 SEC 의장을 비롯해 뉴욕증권거래소(NYSE), 나스닥, 블랙록, 시타델증권, 로빈후드 등 월가 주요 금융·거래소 기관의 발언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일반인들도 관련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
이는 우리의 정책 결정 방식과 대조된다. 지난 4일 토큰증권 정책방향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일반 투자자들이 공개적으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라운드테이블 같은 자리는 없었다. 민·관 합동 토큰증권 협의체가 구성돼 세차례 회의가 진행됐지만 협의체 멤버가 아닌 기업이나 투자자들이 의견을 제시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지난 4일 열린 민·관 합동 토큰증권 협의체 회의 현장을 취재하러 갔지만 예탁원 1층 엘리베이터 출입부터 통제돼 회의 현장 취재조차 불허됐다.
앳킨스 위원장은 “시장과 발맞추는 동시에 투자자와 고객 보호라는 핵심 원칙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며 라운드테이블 필요성을 강조했다. 아직 안 가본 길이기 때문이다. 시장의 혁신을 촉진하면서도 투자자를 보호해야 하는 만큼 정책 결정은 쉽지 않다. 이럴수록 다양한 시장 참여자와 투자자의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듣고, 그 과정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해 삼성전자·SK하이닉스 같은 인기 주식이나 BTS와 같은 콘텐츠·지식재산권(IP) 관련 자산을 토큰화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릴 수 있다. 이런 시대를 대비하고 해외 투자자들까지 끌어들일 수 있는 매력적인 한국형 투자상품을 만들려면 당국의 정책 결정 방식 역시 한 단계 더 개방될 필요가 있다. 앞으로 관련 시행령을 마련·확정하는 과정에서 시장, 투자자들과 함께 하는 라운드테이블이 만들어지길 기대해본다.
우리나라 토큰증권 정책에도 정책 확정 전에 시장과 투자자들과 터넣고 정책을 살펴보는 ‘체크 앤 밸런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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