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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시절을 함께한 모교를 떠올려 보자. 도로변에 낮게 둘러쳐진 담장, 드넓은 운동장을 앞에 두고 우뚝 선 판상형(板狀型) 건물에는 격자형 창문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이곳에 교실이 꽉 들어 차 있음을 말해준다. 운동장에는 구령대를 가운데 두고서 축구 골대 두 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고 체육관에도 행사 때나 밟아보는 무대와 농구 골대 몇 개가 매달려 있다.
이쯤에서 피어오르는 의문이 있다. 과연 축구나 농구를 하지 않는 아이들은 어디서 무얼 하며 놀아야 할까? 우리의 학교에 마련된 놀이공간에서 아이들은 선택의 자유를 박탈당한다. 집단 운동, 나아가 집단 통제에 최적화 된 구시대의 공간 구성을 그대로 답습해 왔기 때문이다. 교사동과 운동장, 기껏해야 농구장이 전부인 획일적 공간이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의 개성을 다양하게 수용할 수 없음은 당연지사다.
반면 교육 선진국인 북유럽의 학교공간에는 대부분 대형 운동장이 없다. 학교 앞에 공허히 펼쳐진 운동장 대신 건축물이 부지 전체를 재미있게 점유하고 있다. 운동장을 확보하지 않아도 되니 다른 공간들을 여유롭고 풍성하게 계획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중 특히 주목할 부분은 작은 유희공간들이 내·외부에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는 점이다. 조금 넓게 마련된 복도 한켠 바닥에는 멀리뛰기 눈금이 표시돼 있고 쉬는시간엔 교실 옆에 마련된 실내 클라이밍 기구에 매달려 볼 수도 있다. 점심시간에는 중정에 모여 가구디자이너들의 재능기부로 만들어진 움직이는 가구들을 즐기며 논다. 물론 축구를 즐길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다만 대형 운동장이 아닌 작은 간이축구장이 군데군데 조성돼 있어 다른 모든 놀이들과의 공간적 균형을 이룬다. 교실수업 이외의 수많은 활동들에 대한 기성세대의 인식을 대변하는 공간구성인 셈이다.
우리 아이들은 과연 학교의 공간들을 특히 운동장을 얼마나 사용하고 있는가. 행사와 조회, 운동회, 집단체육 등의 이벤트를 위해 평소 비워져 있는 대형 공간들을 아이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교실만 들렀다 하교하는 학교는 아이들에게 닫힌 공간일 뿐이다. 학교의 모든 공간들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누구나 참여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을 때 그때에야 그곳을 우린 열린 학교, 열린 공간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공공건축물은 시민들의 자율성이 보장되는 공간일 때 가치를 가진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공간의 이용에 있어 아이들의 심리적 평등이 구현될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이 마련돼야 한다. 교실, 운동장, 강당, 급식실 뿐인 천편일률적 프로그램의 공간에서 창의와 활기를 기대한다면 이는 어른들의 욕심일 것이다. 매력적인 유희공간들이 서로 경쟁하듯 아이들에게 손짓하는 곳, 그곳에서 우리 자녀들의 공간 주권이 실현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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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現) Architects H2L 대표
- 현 중앙대학교 건축학부 겸임교수
- 건축사/건축학박사/미국 친환경기술사(LEED 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