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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호남에서 새누리당 출신이 정치를 한다는 것은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1980년 5월 18일 이후 광주의 한을 어찌할 수 없는 호남민심이 영남 기반의 여권을 지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철옹성은 쉽게 깨지지 않았습니다. 여권 후보의 호남 도전은 바로 낙선입니다. 호남에서 여권후보가 마지막으로 당선된 것은 1985년 12대 총선이 마지막입니다. 그것도 소선구제가 아닌 중대선거구제였기 때문에 가능했을지 모를 일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이 거셌던 2004년 17대 총선. 무명의 한나라당 당료가 광주 서을에 출마합니다. 광주 다른 지역에는 한나라당 후보조차 없었습니다. 결과는 예상대로 낙선. 득표율은 겨우 1.03%. 720표를 얻으며 전체 5명 후보 중 꼴지를 기록했습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또 도전합니다. 40%에 가까운 득표율을 기록하고 아깝게 낙선합니다. 얼음장처럼 차갑기만 하던 호남 민심이 녹아내린 것은 2014년 7.30 전남 순천·곡성 재보선이었습니다. 1984년 민정당 공채로 입문한 이후 무려 30년간 모진 풍과를 겪은 뒤에 고향에서 금배지를 다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의 이름은 이정현입니다.
1980년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 복학생 대표로 마이크를 잡은 한 학생이 1만여명을 대상으로 열변을 토합니다. 훗날 ‘아크로폴리스의 사자후’로 불린 명연설을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됩니다. 학생운동과 재야활동을 거쳐 90년대초 현실 정치에 입문했지만 이른바 꼬마민주당과 통추 시절을 겪으며 고난의 가시밭길을 걷습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우여곡절 끝에 배지를 달지만 3년 뒤 탈당하고 열린우리당 창당에 합류합니다. 독수리 오형제의 일원이 된 것입니다. 이후 정치인생은 거칠 게 없었습니다. 18대까지 경기도 군포에서 내리 3선을 기록합니다.
물론 아쉬움도 있습니다.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10여년간 그를 괴롭힙니다. 만약 한나라당에 그대로 있었다면 TK를 대표하는 차세대 대표주자로 우뚝 섰을 것입니다. 호남을 텃밭으로 하는 정당에서 TK출신의 한계랄까요. 고민하던 그는 더 큰 정치를 꿈꿉니다. 19대 총선을 앞두고 4선이 사실장 보장된 군포를 버리고 고향으로 향합니다. TK 정치 1번지로 불리는 대구 수성갑에 출마했다가 낙선합니다. 2014년 대구시장 선거에 도전했지만 결과는 또 낙선이었습니다. 4.13 총선에서 다시 한 번 도전합니다. 그의 이름은 김부겸입니다.
◇13대 총선 이후 지역주의 심화…與野, 영·호남 일당독재
4.13 총선이 80여일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쉬운 길을 가려 합니다. 이 때문에 여야 대부분의 후보들은 당선 가능성이 높은 지역에 출사표를 던집니다. 여권 후보들은 텃밭 영남에, 마찬가지로 야권 후보들은 호남을 선호합니다.
1987년 대선에서 김영삼·김대중이라는 야권의 거목이 분열합니다. 이른바 양김의 분열은 이듬해 치러진 1988년 총선에서 영호남 지역주의의 고착화를 가져옵니다. 거칠게 이야기하면 새누리당의 전신 정당인 통일민주당,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은 대한민국의 서쪽인 호남을 포기하고 정치를 해왔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평화민주당, 새정치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 통합민주당, 민주통합당, 새정치민주연합 역시 대한민국의 동쪽인 영남을 포기하고 정치를 해왔습니다.
영호남 지역주의가 한국정치에 미친 해악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여야는 영호남에서 사실상 일당독재를 해왔습니다. 아무런 견제장치도 없었습니다. 오죽하면 막대기를 공천해도 당선된다는 말이 나왔을까요?
◇‘지역주의 타파’ 노무현 그리고 이정현·김부겸은?
물론 지역주의에 도전한 정치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있습니다. YS의 3당 합당에 반발했던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13대 총선을 제외하고는 정치적 고향 부산에서 매번 낙선합니다. 한두 번이 아닙니다. 14대 총선은 물론 95년 부산시장 선거에서 떨어졌습니다. 압권은 2000년 16대 총선입니다. 당선이 유력했던 서울 종로를 버리고 부산 북·강서을에 출마해 또 패배합니다. 노 전 대통령은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는 그 유명한 패배의 변을 남겼고 ‘바보 노무현’이 됩니다. 지역주의 타파에 헌신의 그의 정치열정은 향후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는 정치적 자산이 됩니다.
노 전 대통령의 성공 신화 이후 간간히 지역주의라는 견고한 벽에 도전한 정치인들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아쉬운 것은 대부분이 일회성 이벤트에 그쳤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과 김부겸 더민주 전 의원의 도전은 참 아름답습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비관적 전망도 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개의치 않습니다. 그저 오늘도 한걸음 한걸음씩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습니다.
20대 총선에서 이정현·김부겸의 당선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요 만약 두 사람이 나란히 당선된다면 이는 4.13 총선 최대 빅뉴스입니다. 두 사람의 무모한(?) 도전을 응원합니다. 이정현·김부겸은 박수받아 마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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