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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칼럼]번지점프대에 오른 새내기 성년들에게

이지현 기자I 2016.05.16 08:00:00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해야 할 정도로 대한민국 경제 전체가 휘청거리던 해였다. 그래도 변함없이 새 생명의 힘찬 울음소리는 이 땅에 울려 퍼졌다. 그렇게 절망 속에 희망이 됐던 65만6264명의 아기들이 어느덧 오늘로 성년(만 19세)의 문턱을 넘는다. 청소년정책(만 9~24세 대상)을 담당하고 성년의 날 행사를 주관하는 여성가족부에 몸담으면서 어느 한 해 성년의 날이 뜻깊지 않은 때가 없었지만, 올해는 특히 개인적으로도 막내딸이 포함돼 더욱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권용현 여성가족부 차관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바누아투(Vanuatu)의 펜타코스트섬 원주민들은 오래 전 아주 위험하고도 특별한 성년의식을 거행했다. 새로 성년이 되는 사람은 높은 나무탑에 올라가 덩굴을 엮어 만든 긴 밧줄을 발목에 묶고 뛰어내려야 했다. 성인의 자격요건으로 체력과 담력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익스트림 스포츠의 하나로 자리 잡은 ‘번지점프’의 기원이다. 21세기 지식정보화시대에 더 이상 강인한 신체와 용맹함이 성년의 주요 요건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대한민국에서 새내기 성년들이 갖춰야 할 자격요건은 무엇일까.

‘민법 제4조’에 의해 성년으로 인정을 받게 된 국민은 부모 동의 없이도 결혼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며, 또한 정당 당원이 될 수 있고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 등에서 투표할 수 있다. 음주와 흡연이 가능해지는 것도 새로이 얻게 되는 자유다. 한편 짊어져야 하는 책임과 의무도 뒤따른다. 잘못을 저지르면 형법에 의거해 더욱 엄격한 처벌을 받게 되고, 남성이라면 누구나 징병검사를 받아 병역을 이행해야 한다. 사회에서 한 몫을 담당하는 존재로 인정받는 동시에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는 더 이상 뒤로 숨을 곳이 없다. 이 같은 권리와 의무의 ‘아름다운 균형(Beautiful Balance)’을 지킬 수 있는 자부심과 책임감, 이것이 바로 법적으로 부모의 보호막을 걷어낸 이들이 갖춰야 할 자격요건일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오늘의 주인공들이 노력했으면 하는 것이 있다. 이제 긴 안목으로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고 성숙한 성인으로서 필요한 덕목들을 배워가길 바란다. 원하는 직업을 얻기 위해 앞으로 부단히 공부하겠지만, 미래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공부 역시 게을리 하지 않았으면 한다. 최근 세상에 드러난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들이 보여주듯, 준비 안 된 상태에서 부모가 되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커다란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 이제 군대 정훈교육이나 대학 교양과목을 통해서도 부모교육을 받을 수 있다. 이 같은 배움은 전 생애 걸쳐 일·가정 양립을 이루며 행복한 삶을 일굴 기본토양이 될 것이다. 부모님과의 관계개선이나, 보다 성숙한 가족구성원으로 거듭나게 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또한 더불어 사는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20대는 성장기를 지났으나 기성세대에 포함되지 않은 인생의 중요한 전환기다. 후배 청소년들에게는 꿈과 끼를 응원하는 든든한 성인, 사회에는 열정과 용기를 불어넣는 자극제다. 가족과 이웃, 사회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통해 건강한 사회를 이끄는 한 축이 되길 소망한다.

낭떠러지 끝이 보이지 않는 아찔한 번지점프대 위에 서면 두렵고 불안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번지점프가 인기스포츠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안전한 점프시설과 장비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우리 새내기 성년들이 마음 편히 새로운 출발에 몸을 던질 수 있도록 하는 안전한 보호장치는 기성세대와 사회 전체가 마련해 줘야 한다. 좌충우돌 시행착오를 거치는 과정에 행여 실패해 쓰러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하는 여유롭고 개방적인 분위기 말이다. 사회의 당당한 한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성년이 된 것은 분명 축복받을 일이다. 아름다운 청춘들이 오늘뿐 아니라 앞으로 더욱 빛나기를 진심을 다해 열렬히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권용현 여성가족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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