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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의 행복' 콜라텍…인천서 동대문까지 원정도 불사

이슬기 기자I 2018.03.31 13:00:00

동대문 콜라텍 하루 손님만 1000명 가량
무료 대중교통 이용해 인천·동두천서도 노인들 ''원정''
입장료는 2000원·술 안주 1000원…그들만의 ''소확행''

28일 오후 3시쯤 서울 동대문구의 한 성인콜라텍에서 노인들이 트로트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사진=이윤화 기자)
[이데일리 이슬기 이윤화 기자] “여긴 자식한테 용돈 받고 사는 노인네가 남의 눈치 안 보고 시간 보낼 수 있는 곳이야.”

이틀에 한 번 꼴로 서울 동대문구의 한 성인콜라텍을 찾는다는 황모(82)씨. 경기 동두천시에 거주하는 황씨는 한 시간 가량 지하철을 타고 콜라텍에 출근한다. 황씨는 “1호선 끝자락에 살지만 청량리까진 전철 한 번이면 오고 갈 수 있어 오는 데 불편하지 않다”며 “지하철비가 무료니 안 돌아다니면 오히려 손해”라고 했다.

◇노인들의 ‘홍대 클럽’? 동대문 콜라텍 하루 손님만 1000명

청량리역 2번 출구엔 매일 오후 1시쯤이면 한껏 멋을 낸 노년의 신사숙녀들이 모여든다. 그들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청량리역 인근 빌딩 지하 2층에 위치한 1400평 규모의 A 콜라텍과 B 콜라텍이다. 28일 오후 A 콜라텍에 들어서니 대형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 메들리가 귓전을 울리고 천장에는 화려한 싸이키 조명이 쉴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디스코’, ‘일자’, ‘리듬짝’, ‘난스텝’ 이라고 쓰인 각 라인 별로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녀 100여명이 짝을 어울려 흥겹게 스텝을 밟고 있었다.

일주일에 네 번은 동대문구의 콜라텍을 찾는다는 김모(72·여)씨는 “6년 전 남편과 사별한 뒤 외로운 시간을 보내다 동네 지인 권유로 와본 이곳에서 처음 춤추는 재미를 알게됐다”며 “처음에는 자식들한테 콜라텍에 놀러간다고 말하기가 꺼려졌는데 좀 다니다보니 친구들도 많이 생겼고 그 친구들이랑 근처 사교댄스 학원에 춤도 배우러 간다”며 콜라텍 예찬론을 폈다.

A 콜라텍에서 1년째 매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모(50·여)씨는 “많이 올 때는 하루에 1천 명도 넘게 온다”며 “멀리서 오는 분은 부천이나 인천에서도 온다. 어차피 대중교통은 무료고 아침 일찍부터 할 일도 없으니까 친구들 만나러 오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B 콜라텍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61)씨는 “평일에는 하루 평균 700~800명씩 오고 주말엔 1000명 넘게도 온다”며 “콜라텍이 예전처럼 춤바람 나서 다니는 그런 이미지가 아니라 싼값에 갈 곳 없는 노인들이 시간 보내는 여가 공간으로 인식이 많이 바뀌어 가고 있다”고 전했다.

28일 오후 4시쯤 서울 동대문구의 한 성인콜라텍에서 노인들이 장기를 두고 있다. 장기를 두기 위해서는 콜라텍 입장료와 별도로 1000원을 더 내야 한다.(사진=이윤화 기자)
◇입장료 2000원·소주 1000원…‘만원의 행복’ 찾는 노인들

이처럼 콜라텍이 실버세대의 놀이터로 발전할 수 있던 이유는 잘 갖춰진 놀이·편의시설을 저렴한 가격에 한 곳에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콜라텍 내부에는 식당부터 바둑장, 안마실까지 다양한 편의시설들 들어서 있다. 입장료는 2000원 가량에 소주 및 순대 등 술안주는 각각 1000원에 불과하다. 6000원짜리 점심 뷔페를 운영하는 콜라텍도 있다. 춤을 추는 게 지겨워질 때면 1000원을 내고 다른 손님들과 장기와 바둑을 둘 수 있다.

배모(78)씨는 “늙은이들이들이 단돈 1만원으로 하루 종일 있어도 반겨주는 곳이 솔직히 몇 곳이나 되냐”며 “이곳에서는 나이도 사연도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서 1000원 짜리 소주 기울이기에 안성맞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값싼 가격에 큰 행복을 찾아 온 것이라서 남의 눈치 안보고 놀 수 있을 때 부지런히 놀 것”이라고 덧붙였다.

흰색구두에 잘 다려진 셔츠를 입은 김모(83)씨는 “젊은이들 가는 클럽 못지 않은 분위기인데 입장료가 5분의 1인 셈이니 부럽지 않냐”고 되물었다. 그는 “1000원짜리 차 4잔을 시켜놓고 친구들과 한동안 떠들다가 또 스텝을 밟으러 나갈 것이고 그러다 힘들면 1층 식당으로 올라가서 두부 안주하나 시켜놓고 막걸리로 목을 축일 것”이라며 웃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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