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도년 기자] 사립대학을 비롯한 비영리법인과 해외 명품기업 등 유한회사에 대해 회계감사를 의무화하는 방안이 주춤하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손을 놓고 있는 탓이다.
최근 세수 확충에 열을 올리고 있는 정부가 손쉬운 쥐어짜기식 세무조사에만 매달릴 뿐 정작 세원을 넓힐 수 있는 근본 대책엔 소홀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연초 사립학교와 병원 등 비영리법인과 대형 유한회사에 대한 회계감사를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상반기가 지나도록 시기와 대상에 대해 여전히 “전혀 결정된 내용이 없다”면서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각에선 당국의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도 나오고 있다. 정부 부처간 의견 조율이 쉽지 않은 사안인데다, 해당 권역의 전방위 로비 등이 맞물리면 자칫 추진 동력 자체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융감독원은 올해 업무계획에 비영리법인과·유한회사에 대한 회계감사 의무화 방안을 넣으려 했지만, 금융위가 의견을 더 수렴할 필요가 있다면서 삭제를 지시했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사립학교는 교육부, 병원은 보건복지부, 유한회사는 법무부 등으로 소관부처가 달라 생각이 모두 다를 수 있다”며 “개별 부처들의 의견을 모으는 데만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위는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지난 달 법제연구원에 연구용역을 발주해 회계감사 의무화 문제를 좀 더 살펴보기로 했다고 해명했다. 공청회 등 절차를 거쳐 연말까지는 어찌됐든 구체적인 방안을 만들겠다는 얘기다. 금융위 관계자는 “회계감사 의무화라는 새로운 규제로 피해를 볼 수 있는 대상이 생길 수 있는 만큼 좀 더 촘촘한 규제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업계에선 회계감사 의무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립대학이나 대형 병원 등 대형 비영리법인들 중 실제로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형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연세대와 한양대 등 주요 사립대학들은 학생이 낸 등록금으로 교직원 연금을 대납해 온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루이뷔통과 샤넬코리아 등 대형 유한회사도 국내 시장에서 막대한 수입을 챙겨가면서도 법인세 처리는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많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정부가 세수 확충을 위해 기업들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면서 “그러면서도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보단 손쉬운 손목 비틀기식 방법에만 의존하고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