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확천금을 꿈꾸는 한 청년. 평범한 일로는 돈을 벌수가 없다는 생각에 증권이라는 ‘마약’을 파는 증권 브로커가 되기로 합니다. 그가 찾아간 곳은 사설 투자자문업체. 존재 여부도 불확실한 회사의 주식을 팔아댑니다. 거액을 손에 쥐기에 이르지만 그 과정에서 한 가정을 파타내는가 하면 자신의 아버지까지 감옥에 보낼 상황에 놓입니다. 결국 주식 사기의 끝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 “주가 50% 떨어졌다고? 반값에 살 기회!”
2000년 개봉한 영화 ‘보일러룸’은 세스 데이비스(지오바니 리버시)가 입문한 주식 사기의 세계를 다룹니다. 최근 국내서 개봉한 류준열 주연의 ‘돈’ 등의 선배격인 셈이죠.
세스가 입사한 JP말린은 콜드콜(임의로 전화해 주식 거래를 권유하는 방식)을 통해 유령주식을 판매하는 곳입니다. 현역 브로커는 뽑지 않고 자격증이 없는 젊은이들만 모집합니다. 다른 증권회사보다 네 배 수준의 수수료를 지급하는가 하면 검사를 나온 금융당국 관계자는 밤마다 거래 서류를 파쇄합니다.
세스는 회사가 정상적인 곳이 아니라는 낌새를 느끼지만 모른척합니다. 큰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죠. 전재산 5만달러를 잃을 위기에 놓인 해리(테일러 니콜스)에게는 “8달러에 산 주식이 4달러로 떨어졌다면 더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는 논리를 들이댑니다. 가치가 ‘제로’인 주식을 팔기 위해 브로커들에게 화려한 언변은 필수 조건이었습니다. 신문을 팔려고 전화한 영업사원에게 조언을 해주기도 하죠.
그 와중에 전전긍긍하던 해리의 가정은 투자한 돈을 까먹는 것은 물론 가정 또한 파탄이 납니다. 찜찜한 와중에도 ‘골드만삭스는 아니지만 불법은 아냐’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지만 그가 한 행위는 불법이었습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표적이 되고 판사였던 아버지 마티(론 리프킨)마저 함께 소환됩니다. 자신과 함께 일했던 회사를 넘기는 조건으로 겨우 면책권을 얻어냅니다.
‘주식 사기는 결국 상처만 남긴다’는 교훈적인 내용으로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감옥을 다녀오고 나서 자신의 이야기로 돈벌이에 나서던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조던 벨포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는 사뭇 다르네요.
|
유사투자자문 업체와 주식 사기가 영화 시나리오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그만큼 극적 요소가 다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 생활에서도 영화 같은 일들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화제가 됐던 이희진씨 부모 피살 사건처럼요. 수년전 “(가수) 도끼는 불우이웃”이라며 혜성처럼 등장했던 이희진은 ‘청담동 주식부자’로 불립니다.
주식 투자로 막대한 수익을 벌었다는 것인데 수많은 투자자들이 이희진에게 주식 운용을 맡깁니다. 일부 종목들은 실제 수익을 거두기도 하지만 가치도 없는 쓰레기 같은 장외주식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투자자들이 맡긴 돈으로 열심히 운용하기는 커녕 자신의 배를 채우기에 급급했습니다.
‘고객이 수익을 올리는 것보다 내가 돈을 버는 게 더 중요하다’고 외치는 영화의 주인공들처럼요.
꼬리가 잡힌 이희진은 징역 5년을 선고 받고 구속됩니다. 벌금 200억원과 130억원대 추징금을 부여 받지만 돈을 내지 않고 ‘황금 노역’에 들어가죠. 대중의 관심에서 잊혀지고 있었지만 지난 18일 그의 부모가 피살돼 숨진 채 발견됐다는 뉴스에 사회 이슈로 떠오릅니다.
피의자는 조선족을 동원해 살인 후 시신을 유기하고 사망한 부모 행세를 하는 등 엽기적인 행각을 벌이지만 여론은 웬일인지 피해자를 동정하지 않습니다. 사건 기사마다 이희진의 부모가 주식 사기 행각에 동참했다며 ‘당해도 싸다’라는 댓글이 달립니다. 졸지에 부모상을 당한 이희진은 잠시 출소해 장례를 치르지만 대중의 눈초리는 따갑기만 했습니다.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는 벌을 받아야 마땅하고 숨진 피해자들의 명복을 빌어주는 것이 도리지만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수백억원대 주식 사기에 엮인 피해자들 중에서는 가정이 파타난 것은 물론 자살한 사람도 있다는 소문이 돕니다. 이들의 원한이 끔찍한 결말을 낳은 것은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