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열린 김동률 전국투어 대전 콘서트에서는 10분간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이날 김동률이 마지막 앙코르곡으로 ‘기억의 습작’을 부르자 객석에서는 탄성이 쏟아졌다. 일부 여성팬들은 눈물을 쏟기도 했다. 장내에 불이 켜졌지만 10여분간 자리를 뜨지 않는 관객들 때문에 결국 커튼콜을 두 번이나 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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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복사열은 가셨지만 한반도를 달군 ‘복고’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올초 상영한 영화 ‘건축학개론’이 발화시킨 90년대 복고 불길이 문화계에 이어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하는 추세다. 90년대를 주름잡았던 음악들이 음원차트에 재진입하는가 하면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던 상품들이 재조명을 받는다.
케이블 채널 tvN 드라마인 ‘응답하라 1997’도 여기에 해당한다. 이 드라마의 마지막회 시청률은 역대 케이블 드라마 중 가장 높은 9.47%(TNms 기준)를 기록했다. 얼마 전 종영한 SBS 주말극 ‘신사의 품격’도 72년생 주인공 4명의 90년대 학창시절 에피소드를 매회 프롤로그 형식으로 꾸며 쏠쏠한 재미를 봤다.
시청자들은 줄거리 외에도 드라마 삽입곡과 당시 유행했던 휴대용 CD플레이어, 헤어무스, 힙합바지, 삐삐, PC통신 등을 그대로 재현한 소품에 오히려 더 열광했다.
영화 ‘건축학개론’에 등장한 전람회의 노래 ‘기억의 습작’은 발매된지 9년 만에 음원차트에 재진입하는 위력을 발휘했다. 예스24의 경우 영화 상영 후 전람회 1집의 판매량이 70배 늘었고, 토이·패닉·공일오비(015B) 등 90년대 다른 가수들의 음반 판매량도 덩달아 적게는 20%에서 최고 400%까지 올랐다.
‘응답하라 1997’의 주인공 서인국과 정은지가 최근 리메이크해 부른 90년대 인기 혼성그룹 쿨의 듀엣곡 ‘올 포유’ 역시 멜론, 엠넷 등 주요 온라인 음원 차트를 석권했다. 양파의 ‘애송이의 사랑’, 젝스키스의 ‘사랑하는 너에게’, 리아의 ‘눈물’, 서지원의 ‘아이 미스 유’ 등이 담긴 OST도 한 인터넷 쇼핑몰에서 7시간만에 1000개 물량이 판매되는 기록을 세웠다.
90년대 당시 유행했던 제품도 다시 인기다. 인터파크에서는 ‘이스트백’ ‘잔스포츠’ 등 당시 크게 유행했던 백팩의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0% 이상 증가했다. 듀얼 이어폰 잭, 다마고치, 추억의 DDR 등도 인기다.
게임 역시 마찬가지다. 게임 시장에서는 스트리트 파이터, 파이널 판타지, 파워레인지, 프린세스 메이커 등 90년대를 강타했던 기념비적인 히트작들이 스마트폰과 PC버전으로 재등장하고 있다. 90년대 인기 만화 슬램덩크 세트의 7~9월 매출은 4~6월 대비 9배나 성장했다.
문화평론가 강태규씨는 “과거를 추억하는 문화 코드인 복고는 옛 감정을 되살리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주는 매개체 같은 역할한다”면서 “이런 복고의 힘은 그 당시 사연들을 간직한 30~40대부터 IMF(외환위기)시대에 고난을 공감하는 50대, 그리고 10~20대 시청자들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며 큰 울림을 준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복고 현상은 사실 늘 회자되어 왔다고 말한다. 강씨는 “과거를 통해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위안을 얻으려는 심리 때문에 복고 열풍은 늘 지속돼 왔다”면서도 “최근 불고 있는 90년대 복고 열풍은 당시 8090문화를 소비하던 세대가 지금 주력 소비 계층으로 떠올랐다는 점에서 단순한 추억 곱씹기를 넘어 문화 전반에 걸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