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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재판 참관기)⑤롱 스토리는 끝났지만..

이의철 기자I 2008.07.17 10:23:06

에버랜드CB발행 SDS BW발행건 등 무죄 선고
이재용 전무 경영권 승계 법적으론 문제없게 돼

[이데일리 이의철논설위원] 장맛비가 질척질척 내리고 있었다. 이건희 전회장은 직원들이 받쳐주는 우산으로 비를 피하며 법원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취재기자들은 한마디라도 들을 수 있을까 싶어 마이크를 갖다 댔다. 그러나 묵묵부답. 법원 안은 그야말로 발 디딜 틈도 없었다. 밖에 비는 오지, 습도는 높지, 법정 안은 덥지, 그야말로 불쾌지수 급상승. 갑자기 방청석이 소란스럽다. 사람이 넘치니 보조의자를 달라는 어느 방청객의 큰 소리. “국민들에게 행정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것 아니냐”고 짜증을 낸다. 그 방청객의 목소리에 갑자기 짜증이 확 밀려온다.

민병훈 재판장은 낭랑한 목소리로 판결문을 읽어나갔다. 판결문은 비교적 친절했다. 쟁점이 되는 부분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 발행건은 무죄,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발행건은 공소시효 지나 면소, 조세포탈 건은 일부 유죄....

에버랜드 CB건의 경우 재판과정에서 쟁점은 세가지였다. 제 3자 배정이 회사에 손해를 끼친 배임이었나, 이 전회장은 이를 지시했는가, 전환사채의 가격은 적정했는가 등이다. 그런데 재판부는 3자 배정 행위가 배임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나머지 부분은 거론할 여지가 없어졌다.

재판부는 각 항목별로 양형 판단의 기준을 낭독한 뒤 피고인들을 기립시키고 선고했다. “피고인 이건희. 징역3년에 벌금 1100억원. 형의 집행을 5년간 유예한다” 뜻밖이었다. 방청석을 가득 메운 삼성 사장단들에게선 가느다란 한숨이 흘러나왔다. 안도의 한숨일 것이다. 하지만 정작 피고인석 이건희 전회장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실망스럽다. (재판부가) 부끄럽다” “재판부가 삼성에게 면죄부를 줬다” “도덕적 권위가 실종됐다” 선고결과가 나온 후 김용철 변호사,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 김상조 교수 등 삼성의 대척점에서 재판을 지켜봤던 이들에게서 나온 평가다.

그러나 재판부는 법리를 따지는 법률가이며, 이들은 소설가도 아니고, 정치인도 아니다. 민병훈 재판장은 재판 초기부터 공판중심주의를 택하겠다고 천명했다. 민 재판장은 판결문에서 수차례 “공소제기가 안돼 심판대상이 아니다” “특검의 증거가 충분치 않다”고 말했다. 불충분한 증거로 유죄 판결을 내릴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게다가 이번 재판은 형사재판이었다. 형사재판에선 혐의사실을 소명해야 하는 검사의 책임이 민사보다 훨씬 강조된다.

재판이 끝나고 법원 주위를 어슬렁거리다 ‘프레스(PRESS) TV'의 서울특파원을 우연히 만났다. 아마도 코멘트를 듣기위해 내게 질문을 던진 것 같았다. PRESS TV는 이란 관영 방송사다. 머리를 빡빡 민 강한 인상의 이 특파원은 “믿을 수 없는 판결이다. 집행유예라니...너는 수긍하냐”고 묻는다. 내가 되물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삼성이라는 기업이 부정으로 얼룩져 있는데, (총수는) 감옥에도 안간다. 정부 검찰 재판부는 말할 것도 없고 저널리스트에게까지 모두 삼성의 돈이 뿌려진 결과다” 한참을 듣고 있노라니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과 유사하다.

기자는 삼성을 변호할 입장도 못되고, 그렇다고 재판부의 판결을 유창하게 설명할 재주도 없다. 이럴 땐 화제를 돌리는 게 상책이다. “근데 요즘 이란과 이스라엘 관계가 심상치 않다며? 전쟁 나는 거야? 유가는 어떻게 될 것 같애?”라고 물었더니 파란 눈의 이 특파원 “그건 긴 얘기야(long story)"라는 한 마디로 답변을 끝낸다. 그것 참 편한 답변이다.

외국기자와의 짧은 만남은 삼성 재판의 복잡성과 특수성을 함축하고 있다. 사람은 자신이 받아들이고 싶은 부분만 받아들인다. 이는 인지심리학에서도 증명되는 부분이다. 외신기자의 인식이 이런 식인데, (삼성은 이란TV와의 소통이 좀 부족했던 것 같다) 일반 국민들의 인식은 더 말할 필요 없다. 그만큼 삼성은 싫든 좋든 논란거리다. 이후 항소심 나아가 대법원 판결이 어떻게 나든 논란은 여전할 것이다.

어쨌든 삼성 재판의 1심은 끝났다. 그리고 재판부는 삼성의 편법 상속과 관련, 적어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면 이재용 전무는 이제 삼성의 경영권을 상속할 수 있을까? 법적으로 “그렇다” 현실적으로도 “그렇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선택이 아닐까. 이제 이재용 전무가 어떤 인물인지 한번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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