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은 경상북도 상주시 중동면에 있는 ‘상주 수암 종택’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했다고 22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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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채는 안채와 사랑채가 하나로 연결된 ㅁ자형 건물로, 경북 북부지방의 건축적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특히 안채 대청 우측 마루방의 지면을 들어 올려 누마루처럼 꾸민 점은 다른 고택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구조다. 또한 안채 대청 상량묵서에 건립연대(1858년)가 명확하게 남아 있는 등 비교적 원형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다.
녹사청은 본채 전면에 있는 ㄱ자형 건물로, 류진의 7대손인 류후조(1798∼1876)가 1872년 봉조하(70세 내외 2품관 이상의 퇴직관료에게 특별히 내린 벼슬)를 제수받은 후 녹봉을 지고 오는 관리들을 맞이하거나 묵게 하는 용도로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청백리 집안답게 별다른 장식 없이 소박하지만 당시 사회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야사에 따르면 파락호(몰락한 세도 집안의 자제) 생활을 하던 흥선대원군이 한때 수암 종택에 머물면서 영남지역 인물들을 파악하며 후일을 도모했다고 한다. 종가에서 전해오는 죽병(대나무 병풍)이 당시 흥선대원군이 그려준 것이라고 한다. 흥선대원군 집권 후 남인계 중용책에 따라 류후조는 1864년(고종 1년) 이조참판, 1866년 우의정, 1867년 좌의정에 오르게 된다.
‘상주 수암 종택’은 불천위 제사 외에도 기제, 묘제 등 제례문화가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고 녹패·간찰·문집 등 고문헌과 등롱·가마·관복 등 민속유물이 다수 남아 있어 조선시대 중ㆍ후기 상주지역 상류주택에서의 생활문화를 잘 보여 주고 있다. 특히 류진이 남긴 ‘임진록’ ‘임자록’과 흥선대원군과 류후조가 주고받은 ‘운현간첩’ 등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조선의 정치·사상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