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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품을 구현한 건설기술연구원은 모듈러주택에 대한 설명에서 ‘12가지 실증기술’에 주목했다. 모듈 하나의 무게가 대략 25t인 점을 감안해 모듈을 운반하기 위한 운송기술을 개발했고 모듈간 접합의 방식도 연구했다. 단위세대를 쌓고 붙이는 과정에서 결함이 생길 수 있는 내화, 내진, 단열에 대한 독자적인 해결책 역시 마련했다. 국책연구소가 첨단 건설기술을 동원하고 개발했다는 점에 비춰 정부가 모듈러주택에 거는 기대감을 짐작케한다 .
다만 이같은 라이품의 준공에서 우리가 모듈러 주택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모듈러(modular)’ 개념의 기원을 찾아보면 우리의 모듈러주택엔 ‘건설’만 있고 ‘건축’은 없음을 찾아낼 수 있다. 모듈러 이론은 근대건축 거장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에 의해 연구돼 세상에 태어났다. 그는 인간의 신체척도와 비율을 기초로 ‘황금분할’을 찾아내 건축적으로 수치화시켰는데, 인간이 다리를 뻗거나 팔을 벌렸을 때 불편함이 없는 기초 치수들을 규정해 건축물을 설계하는 방법론을 내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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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모듈러 이론은 편안한 거주, 곧 삶을 위한 도구였다. 반면 수십년이 지난 지금 한국에서 주목하는 모듈러주택은 단지 효율성에 집중한 모습이다. 코르뷔지에의 모듈러주택 역시 같은 단위의 집합으로 쌓아올리기에 건설 효율성을 담보하지만 이는 결국 ’사람‘이 사용하는 공간에 대한 건축적 연구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 세워지고 있는 모듈러주택은 대량공급 효율성, 공사 효율성, 공급가격 효율성, 공기 효율성 측면에서 다루어지고 있으며, 각 단위세대의 내부공간이 어떤 삶을 담기 위한 것인지 궁금해 하지 않는다.
물론 주거에 대한 부담이 상상을 초월하는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모듈러 주택은 탁월한 해결책일 수 있다. 그럼에도 최근 모듈러주택에 대한 담론들은 우리가 집이라는 공간에서 파생되는 많은 요소들 중 ’정량적‘ 가치에만 몰입해 있다는 점을 다시한번 보여준다. 아파트 문화가 만들어 낸 ’집의 도구화‘ 풍조는 모듈러주택의 효율성만을 부풀려 재생산 해 내고 있는 것이다.
모듈러주택 도입기인 지금 ’건설‘과 ’건축‘이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건축적 해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가 모듈러주택을 통한 주택공급에 발 벗고 나선 이상 모듈러주택 시장의 확대는 지속될 것이고 현장에서 건설하는 기존 집합주거공간의 건설형식을 바꿀 새로운 방법론으로 대두될 가능성도 있다. 이제 ’얼마나 빨리‘, ’얼마나 싸게‘ 지을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와 함께 ’얼마나 좋은‘ 거주(dwelling)가 가능한지에 대한 연구가 병행돼야 한다. 건설의 기술과 함께 건축과 삶의 기술이 뒷받침 될 때 모듈러주택의 힘은 증폭될 것이다. 기술이 적용될 대상은 결국 우리 삶의 터전인 집이 될 것이란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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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現) Architects H2L 대표
- 현 중앙대학교 건축학부 겸임교수
- 건축사/건축학박사/미국 친환경기술사(LEED 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