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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한국 연극의 살아있는 역사인 백성희 씨가 별세했다. 향년 91세. 고인은 최근 건강이 급격히 악화돼 노환으로 지난 8일 밤 11시 18분경 타계했다.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원로배우 백성희 타계 소식에 애석한 마음을 전했다. 김 예술감독은 “한국 연극계의 큰별이 졌다”며 “고인이 보여줬던 투철한 직업정신과 연기에 대한 열정을 후배들이 이어받아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의 연기 수준을 상당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 큰 공을 세우신 분”이라고 고인을 회고하며 “국립극단의 대표 레퍼토리 ‘3월의 눈’에 다시 한번 출연하고자 집념을 불태웠는데 그걸 이루지 못하고 타계해서 너무 마음이 아프고 서운하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1925년 9월 2일 서울에서 태어난 백성희는 17세에 빅터무용연구소 연습생, 빅터가극단 단원을 거쳐 1943년 극단 현대극장 단원으로 입단했다. 같은 해 연극 ‘봉선화’로 데뷔한 이후 70년 넘게 오로지 연극 한 길만을 걸어온 한국 연극사의 산증인이다. 1950년 창단한 국립극단의 창립 단원으로 옮긴 고인은 1972년 단장 직선제에서 최연소 여성 국립극단 단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당시의 지도력과 행정력을 인정받아 1991년 다시 한 번 국립극단 단장에 추대됐다. 2010년에는 국내 최초로 배우의 이름을 딴 극장인 ‘백성희장민호극장’의 주인공이 됐다.
‘작품은 가려서 선택하지만, 배역은 가리지 않는다’는 신조 아래 평생 400여 편의 연극에서 다양한 역을 맡았다. 최근까지도 ‘3월의 눈’(2013), ‘바냐아저씨’(2013) 등에 출연했지만 건강이 급격히 악화돼 서울의 한 요양병원에서 투병 중이었다.
대표작으로는 ‘봉선화’(1943), ‘뇌우’(1950), ‘나도 인간이 되련다’(1953), ‘씨라노 드 벨쥬락’(1958), ‘베니스의 상인’(1964), ‘만선’(1964), ‘달집’(1971), ‘무녀도’(1979),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81), ‘메디아’(1989), ‘강 건너 저편에’(2002), ‘3월의 눈’(2011) 등이 있다. 연극계의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80년 대통령표창을 비롯해 대한민국연극상(1985), 한국연극인상(1993), 제34회 백상예술대상 여자연기상(1998), 은관문화훈장(2010), 제1회 이데일리 문화대상 공헌상(2014) 외 다수의 상을 수상한 바 있다.
고인은 지난해 후배들의 도움을 얻어 지난 12월 15일 회고록 ‘백성희의 삷과 연극: 연극의 정석’을 발간하기도 했다. 김남석 부경대 교수가 지난해 4월부터 고인의 인터뷰와 구술 채록, 과거 인터뷰 분석 등을 통해 정리했다. 연기 입문 계기부터 국립극단 단원 시절, 한국 연극에 대한 제언 등 백씨의 연극인생이 640페이지에 걸쳐 담겨 있다. 김 교수와 고인의 대담을 비롯해 평론가 서연호, 연극배우 김금지, 연출가 임영웅 등 연극계 명사 5인의 인터뷰도 담았다.
한편 고인의 빈소는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호실이며 발인은 오는 12일 오전(시간 미정)이다. 장지는 분당메모리얼파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