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이데일리 문주용 특파원] 미국과 중국 간 관계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표현들이 몇 가지 있다.
덩 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 영어로 하면, Hide our capabilities. Bide our time. Never claim leadership 이다. 자신의 재능이나 명성을 감춘다, 나서지 않고 때가 오기를 기다린다는 뜻이다.
중국이 개혁 개방에 나선 1970년대 후반 이후, 미국 등 선진국과의 경제력 격차를 절감하면서 세계 강국의 복귀를 꿈꾸던 때, 중국의 자세다.
덩 샤오핑의 의도는 맞아떨어졌는지, 중국을 방문했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중국의 태도에 호의를 보였다. 특히 중국의 경제개방은 중국 정치의 민주화로 이어질 것으로 미국 지도자들은 판단했다.
부시 대통령은 " Trade freely with China and time is on our side."(중국과 자유롭게 교류한다. 시간은 우리 편이다)라며 양국 관계에서 미국 주도가 더 강해질 것임을 낙관했다.
일방주의 외교를 폈던 부시 대통령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성장하는 중국의 파워에 더욱 관대한 모습을 보였다. 취임 후 처음 중국을 방문했을 때다.
"Power does not need to be zero-sum game. Nations need not fear the success of each other.(강대국끼리 제로섬 게임을 벌일 필요가 없다. 각국은 다른 나라의 성공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美, 금융위기 후 對 중국 호의적 태도 약해져
그리고 미국과 유럽에 금융위기가 터졌다. 원인이 모기지 대출 부실이든, 자산 거품 붕괴든, 글로벌 불균형이든 간에 선진국에서 터진 위기 과정에 중국은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섰고, 美 유럽 국채를 매입하며 세계경제 소방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같은 중국의 위상 변화가 이번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미국 방문에서도 분명히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후 주석과 오바마 대통령이 만들게 될 새로운 중-미 관계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중국에 대한 관대한 태도가 금융위기 이후 크게 약해진 점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의 영접이 그 어느 때보다도 성대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은 비공식만찬과 단독, 확대 정상회담 등 두 차례나 정상회담을 하며 중국으로부터 확실한 다짐을 받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치권과 경제계 모두 조바심을 내고 있다.
상원의 맥스 보커스 재무위원장(민주당)은 후 주석 앞으로 보낸 서한을 보냈다. 미국산 쇠고기를 중국이 계속 수입을 거부해서는 안 되며, 조속히 협상을 마무리 지으라는 요구를 담았다. 지적재산권 보호와 위안화 환율 시스템 개선도 요구했다.
민주당 소속의 찰스 슈머(뉴욕), 데비 스태브노우(미시간), 밥 케이시(펜실베이니아) 상원의원은 중국 위안화 약세에 대처하는 법안을 제출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재무부에 환율조작 여부 조사, 실질 대응을 요구, 최고지도자를 안방으로 불러들여 놓고 중국을 압박하겠다는 뜻이다.
경제계도 지적재산권 문제 등 무역 차별조항 철폐와 시장 개방을 더욱 요구하며 후 주석의 성의를 기대하고 있다. `손님 불러놓고, 간까지 꺼내겠다`는 속내다.
◇中, 정면대응보다 화합 강조 ‥우회적 위상 강화 모색할 듯
하지만 중국 측도 단단히 준비하고 온 듯하다. `중국의 현대 지도자 중에 가장 약한 지도자`라며 후 주석 측을 자극했던 뉴욕타임즈(NYT)는 18일 자 인터넷판에서 후 주석 측 반응이 뜨겁지 않을 것임을 예상했다.
NYT는 "오바마 대통령은 환율, 무역 불균형, 인권, 중국의 군사적 확대 등 이슈에 대해 분명한 개선을 강력히 요구할 것"이라며 "그러나 후 주석은 특유의 `화합`을 강조하면 낮은 수위로 호응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칼럼에서 양국 정상이 실용주의자라는 점에서 갈등보다는 화합에 무게를 두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갈등보다 화합에 방점을 두는 양국 관계 설정이라면, 중국이 유리한 입장이다.
북한, 이란 핵 문제와 양국 군사협력 문제, 중국 위안화 환율과 무역 불균형 문제 등 모두 미국이 중국 측의 협력을 약속받아야 하는 주제들이다. 구두 합의 수준이 아니라, 구체적 행동이 따라야 한다는 게 미국 측 입장이다.
NYT가 후 주석을 허약한 지도자로 꼬집은 이유도, 합의를 실행할 리더십을 보이라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인권 문제에서는 비민주성을 지적하면서, 미국 이익의 관철에는 지도자 독단의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중국 측이 동의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중국은 갈등을 피하고 화합을 약속하며, 높아진 위상을 약속받는 자리로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