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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DDP서 감상한 리얼 ‘평양 다큐’..가깝고도 먼 北

임현영 기자I 2018.09.22 15:00:00

18~20일 평양 정상회담 2박3일 취재기
하루 5~6회 현지서 찍은 영상 송출
흔들린 앵글에 담긴 평양 시가지
'가깝지만 몰랐던' 북한 모습 접해

18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마련된 남북정상회담 메인프레스센터에서 각국 취재진이 대형모니터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임현영 기자] “지금부터 시청하실 영상은 현지에서 방금 송출된 평양 시가지 영상입니다. 메이 아이 어텐션 플리즈(May I attention please)...”

평양 남북정상회담의 취재를 돕고자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마련된 메인프레스센터에는 하루 5~6차례씩 우리 취재진이 보내온 영상이 재생됐다. 남북 정상의 공식일정부터 옥류관·대동강수산물식당 등 친교일정, 평양 시가지·출근길 등 좀처럼 접하기 힘든 북한의 일상도 담겼다.

현지에서 막 전송된 탓에 카메라 앵글은 다소 거칠고 불안정했다. 덕분에 속이 울렁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대형 스크린을 가득 메운, 날 것 그대로의 북한 모습에서 눈을 떼기 어려웠다. 북한판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란 생각이 들었다. 낯선 체제의 이질감과 한민족이라는 동질감이 함께 느껴졌다.

‘2018남북정상회담평양’의 첫날인 18일 오전 평양 시내에서 환영나온 시민들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차량 행렬을 향해 환호하고 있다. (사진=평양공동취재단)
먼저 놀라웠던 것은 평양 시가지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함께 카 퍼레이드를 하는 도중에 배경에는 총천연색 건물이 자연스럽게 카메라에 잡혔다. 수만 명의 환영인파와 함께 빨강·노랑·초록·파랑 등 알록달록 건물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평양의 강남’으로 불리는 창전거리에 위치한 초고층 건물도 다수 눈에 들어왔다. 모두 개혁·개방을 강조한 김 위원장이 2016년부터 조성한 신도시에 해당한다. 기존 저층건물과 섞여 화려한 스카이라인을 자랑했다. 평양이 ‘단조롭고 건조한 무채색 도시’일 거라는 편견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2018 남북정상회담 이틀째인 19일 아침 평양시민들이 출근길을 서두르고 있다. 특별수행원 숙소인 평양 고려호텔에서 바라다본 모습이다. (사진=평양공동취재단)
평양 시민들의 출근길은 서울과 다를 바 없었다. 시민들은 한 손에 스마트폰을 든 채 단정히 차려입고 목적지로 향했다. 교통수단은 일터로 나가는 시민들로 붐볐다. 학생들도 무리지어 등교했다. 여느 도시 풍경과 비슷한, 익숙한 풍경이었다.

여전히 거리감이 느껴지는 장면도 많았다. 대체로 다른 체제로 인한 이질감이었다. 평양 순안공항에서 백화원 초대소까지 문 대통령을 반긴 수십만명의 환영인파가 대표적이다. 여성들은 한복, 남성들은 정장을 맞춰입고 준비해 온 진분홍 꽃술을 거의 같은 각도로 흔들었다. “조국 통일” “만세”도 동시에 반복적으로 외쳤다. 최고 수준의 환대를 받은 것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전체주의 특유의 감성도 느낄 수 있었다.

공연 영상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에서 어린 학생들은 김정숙 여사 앞에서 공연을 펼쳤다. 북한 최고의 영재교육을 받은 학생들답게 나이에 비해 수준높은 완성도를 자랑했다. 그러나 다소 과장된 표정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에 일말의 불편함도 느껴진 것이 사실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일 오전 백두산 장군봉에서 손을 맞잡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평양공동취재단)
2박3일 간의 일정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은 두 정상의 백두산 천지 등반이었다. 송출된 영상에도 감동이 그대로 담겼다. 구름 한 점없는 파란 하늘과 산꼭대기에 고인 짙푸른 천지의 전경이 스크린에 띄워지자 취재진의 탄성이 나왔다. 영상과 함께 들리는 세찬 바람소리도 분위기를 더했다. 그때 만큼은 취재진이 아닌 시청자로써 백두산 영상을 관람했다.

두 정상은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화창한 천지를 배경으로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가히 이번 회담의 ‘베스트 컷’이었다. 대부분의 조간신문이 이 사진을 다음날 1면으로 사용했다.

스크린에 송출된 북한 영상을 보며 자주 혼란스러웠다. 무지(無知)에서 비롯된 얄팍한 편견들이 대체로 빗나갔기 때문이다. 무지의 깊이가 그만큼 깊었다. 같은 언어를 공유함과 동시에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에 이토록 몰랐다는 점을 새삼 깨달았다.

어쩌면 이제부터 시작이다. 북한은 자주 우리들의 편견을 뒤흔들 것이다. 이번에 공개된 영상은 북한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본격적으로 북한의 속살을 편견없이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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