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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키우는 미국…"상상이 되십니까"

오현주 기자I 2011.09.19 10:01:19

식량불안 해소 위해 집에 닭장 만들고
노숙자 늘어도 대책없이 다른 지역 떠넘기기
도덕적 해이 등 `붕괴`조짐…한국에 타산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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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
김광기|292쪽|동아시아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석기시대로의 귀환`이란 말을 들어봤는가. 매끄러운 아스팔트를 파헤쳐 들어내고 자갈길을 깐다. 고풍스러워 보이려는 미관상의 이유냐고 묻고 싶을 거다. 아니다. 비용 때문이다. 아스팔트 도로는 시간이 지나면 패이기 마련이다. 당연히 보수를 해야 깔끔한 아스팔트 고속도로의 가치가 빛난다. 하지만 돈 문제는 도로에 징 같은 자갈을 박았다. 최근 미국 이야기다.

찬란했던 영화를 뒤로하고 마치 석기시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주는 일은 더 있다. 닭을 키우는 미국 가정 얘기다. 집에서 가축을 키워 잡아먹는 문화는 애초 미국에 없었다. 그런데 뒤집혔다. 고기와 달걀을 식탁에 올리기 위해, 더 절실한 심정에선 식량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닭장을 만들고 병아리를 키운다. 부작용도 생겼다. 닭울음이다. 밤잠을 설친 주민들의 빗발친 민원에 급기야 어느 시의회는 한 가구당 닭 한 마리씩만 키우는 조례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건 로스앤젤레스 시 이야기다.

`우리가 아는` 그 잘 나가던 미국은 이제 없다는 것이 책의 제목인 동시에 주제다. 세밀화를 통해 미국을 다시 읽어야 하는 쉰두 가지 이유를 나열했다. 막연한 미국 위기의 실체를 명확히 했다. 소소한 일상에서 시작된 지적은 점차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 사회관계망의 붕괴를 전망하는 것으로 확대된다. 예를 들어 닭을 키우는 행위는 “정상적인 교환경제 사회의 그물망이 해체되고 다른 이들의 도움을 유기적으로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선택한 생존전략”이란 주장이다.

현재 미국인 200명 가운데 1명은 노숙자로 기록된다. 30세 이상의 남성이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는 노숙자들은 자동차와 텐트를 전전한다. 노숙자 문제를 해결하는 주정부의 대책은 `심플`하다. 항공비를 대서 다른 주로 노숙자를 밀어내는 거다. 집 없는 실직자를 위한 공공임대주택 신청서를 배포하는 날엔 3만명의 시민이 몰렸다. 섭씨 35도가 넘는 찜통더위 속에 벌어진 소동 때문에 62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는 웃지 못 할 보도까지 나왔다.

미국 몰락의 원인이 경제문제에만 있지 않다는 것이 책의 핵심이다. 정치와 경제, 사회 등에 만연한 도덕적 해이가 더 큰 위기라는 진단이다. 이 잣대는 고스란히 한국 사회에 들이댔다. 이유는 닮아도 너무 닮았다는 거다. 무분별한 대출과 신용카드 발급으로 빚을 양산한 자본의 왜곡은 물론 지방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으로 집단 이기주의를 쏟아낸 사회구조의 기형까지 똑같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런 면에서 책은 한국이 미국을 닮아가서는 안 되는 쉰두 가지 이유로도 읽힐 수 있다.

한때 미국을 흠모했다는 미국 유학파 사회학자인 저자가 품었던 전형적인 시선을 스스로 벗겨낸 데 의미가 있다. 그는 빛바랜 옛 영광을 그리며 미국이 휘청거리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예전에 당신이 그리웠노라고 목 놓아 우는, 반미라기보다는 헌사”라고 에두르며 질퍽한 애정관계를 감추진 않았다. 애증의 대상에서 `타산지석`을 챙겨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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