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건졌다 그저 시간만 맞췄을 뿐인데…

조선일보 기자I 2008.10.23 12:40:00

사진 잘 나오는 궁극의 타이밍

[조선일보 제공] 사진을 묘사하는 가장 흔한 말은 '빛의 예술'이란 표현이다. 이 말은 결국 사진가는 피사체가 아니라, 빛과 싸워야 한다는 말과도 같다.

김태영(36)씨보다 더 절실하게 '빛과의 싸움'을 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김씨는 '타짜' '국경의 남쪽' 등 무수한 영화와 CF에 꼭 맞는 촬영지를 찾아내는 로케이션 매니저(location manager)란 직업을 갖고 있다.

▲ 08:30_ 물안개가 충분히 피어올랐다. 물을 뚫고 올라온 나무 그림자가 물 위에 선명하게 투영된다. 신비롭기까지 하다. 단풍의 알록달록한 색감이 또렷하게 살았다.

"'○○동 ○○빌딩' 하면 아침 해가 빌딩의 어느 지점에 어떤 모양의 빛을 드리우는지, 석양이 어떤 각도로 어떤 색깔을 드리울지 머리에 떠오를 정도"라는 김태영씨는 "똑같은 장소라도 언제 어떤 빛을 받느냐에 따라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했다.

"같은 사람이라도 아침과 저녁 느낌이 달라요. 아침의 약간 푸르스름한 빛을 받은 얼굴을 한 사람이 입김을 '후~후~' 불면 '힘내라, 파이팅' 하는 분위기가 나죠. 저녁 석양을 받으면 로맨틱하게 변하잖아요. 술도 한 잔 해야 할 것 같고." 김씨는 "빛의 미묘한 차이를 잡아내야 좋은 사진"이라고 말한다. 그는 장소나 상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일반적으로 4개 등급으로 나눌 수 있다고 했다.

▲ 06:00_ 주왕산 국립공원 주산지. 해 뜨기 직전. 너무 어둡다. 나뭇잎의 질감이 살아나지 않고, 물안개도 피어오르지 않는다.

▲ 07:50_ 해 뜬 직후. 산속이라 그런지 여전히 어둡지만 1과 비교하면 훨씬 밝다. 단풍 색깔이 선명하게 표현된다. 물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 08:14_ 또 다른 각도에서 촬영한 주산지. 햇살이 대각선으로 숲을 침투한다. 나뭇잎이 역광 속에서 신선하게 빛난다.

▲ 13:30_ 정오를 1시간30분 넘겼지만, 해가 여전히 높다. 하늘 꼭대기에서 균일하게 떨어지는 햇빛은 콘트라스트와 질감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다. 사진이 밋밋하다.

 
▲ (위/아래)17:00·17:25_ 해가 충분히 기울었다. 비스듬히 들어오는 햇살 덕분에 5와 비교해 질감이 훨씬 도드라진 사진이다. 하지만 너무 어둡다. 산속이라 해가 일찍 진다. 물안개도 없다.

빛 1등급_ 가장 찍기 좋은 빛. 해가 뜬 직후, 또는 지기 전 길게 누웠을 때이다. '매직 아워(magic hour)'라고도 한다.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고,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의 대비(콘트라스트)가 커져서 감정을 살릴 수 있다. 요즘(10월 23일 현재)은 오전 6시 20분부터 7시까지, 오후 4시에서 5시 30분 정도. 일출 직전이나 일몰 직후도 좋다. 해가 뜨기 직전 하늘과 구름이 푸르스름하거나, 해가 지기 직전 불그스름한 기운이 돌 때 느낌이 아주 좋다.

빛 2등급_ 오전 9~11시. '베스트'는 아니나 무난하다. 이것저것 찍을 수 있다.

빛 3등급_ 오후 2~4시. 역시 빛이 무난하다. 화면을 구성하고 카메라 장비를 세팅하고, 연기자들이 감정을 잡으면서 매직 아워를 기다리기도 한다.

빛 4등급_ 정오. CF나 영화 계통에서는 '중꼬'라는 일본말 속어로 통한다. 햇빛이 균일하게 떨어지기 때문에 대비감이나 드라마틱한 느낌이 없다.

"1등급 중에서도 '1++' 등급을 꼽을 수 있을까요? 한우 쇠고기처럼요."

"일출 직후, 20분 내 없어지는 극히 짧은 빛이에요. 햇살이 사물에 닿기도 전, 주변 사물을 볼 수는 있지만 콘트라스트는 없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느낌이 기가 막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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